이순신, 안중근과 이토, 데라우치
이순신, 안중근과 이토, 데라우치
  • 경남일보
  • 승인 2020.11.1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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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지난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1주년 기념일이었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에 의해 심판받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임무를 마치고 귀국길에 경남의 진해만에 들려서 러일전쟁의 승리를 기뻐했고, 1910년, 제3대 통감으로 온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한일병탄을 성사시킨 날,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선배들을 생각하며 감격했다. 을사늑약의 원흉인 이토가 110년 전, 진해만을 바라보며 기쁜 마음으로 지은 한시이다.

여기가 바로 동양의 이름난 바다 진해만인데(卽是東洋鎭海灣)

수군이 그림자를 숨기고 여러 겹 관문을 에워싸고 있네.(水軍潛影擁重關)

생각해보니 일찍이 격전으로 누함들이 가라앉았었는데(想曾激戰沈樓艦)

이기고 지는 성패 나뉜 것이 손바닥 뒤집는 사이로구나!(成敗分來反掌間)

이토는 이 한시에서 진해만이 군항으로서 동양 최고라고 찬양하고 있다. 그림자까지 숨길 수 있을 만큼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진해만의 특징을 이토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일본 해군은 러일전쟁 때, 발틱해에서 출발한 러시아 태평양 제2함대를 진해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연합함대는 이곳에서 외부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은밀하게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 마지막 구절에 있는 반장(反掌)은 손바닥을 뒤집다, 일이 매우 쉽다라는 뜻이다. 비록 임진왜란에서는 패배 했지만 러일전쟁에서는 이겼으니 손바닥을 뒤집은 셈이다. 이토는 진해만을 보면서 러일전쟁의 승리를 자축하였다.

그의 후배인 데라우치는 달을 보면서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그들의 조상을 생각했다. 기타지마 만지(北島万次)가 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에는 한국이 병탄된 1910년 8월 밤에, 데라우치는 ‘고바야카와, 가토, 고니시가 이 세상에 있다면 오늘 밤 이 달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한시를 읊었다.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는 임진왜란 때에 우리나라를 짓밟은 침략자들이다. 데라우치는 1910년 5월 조선합방을 완결지으라는 명령을 받고, 제3대 통감에 임명되어 조선에 왔다. 1910년 8월 22일, 창덕궁 안팎에 무장군인을 배치하여 일체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이완용과 데라우치는 나라를 ‘합방’ 한다는 조약에 나란히 서명하였다. 민중의 반발을 우려하여 폭죽 사용과 모든 정치단체의 집회도 금지시키고, 대신들의 자택을 감시하면서 일주일간 분위기를 살피다가 8월 29일, 순종을 압박하여 서명도 하지 않은 ‘칙유(勅諭)’를 공포하도록 하였다. 데라우치는 합의에 의한 조약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합방’을, 이완용은 일본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는 뜻으로 ‘합병’이라는 용어를 골라 썼다. 그러나 빼앗겼다는 정확한 표현은 늑약에 의한 ‘병탄’이다. 조선 왕조는 건국 이후 27대 522년의 막이 내려졌다. 융희황제 순종은 이왕으로 폐위되고, 황태자 영친왕 이은은 왕세자로 전락했다. 나라가 망한 것이다. 바로 경술국치이다. 초대 총독이 된 데라우치는 바로 그날 밤 300여 년 전의 임진왜란 당시 조상들을 생각하면서 깊은 감회를 담은 한시를 썼던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대첩 직전 날인 1597년 10월 25일, 장병들에게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하였다. 전쟁승리와 식민지 정복에 도취한 이토와 데라우치의 한시를 보면서 1598년 11월 19일 순국하신 이순신 장군과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의 안중근을 생각한다.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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