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현대에 더 우뚝한 남명정신
[기고]현대에 더 우뚝한 남명정신
  • 강동현1
  • 승인 2020.11.1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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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갑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사무처장)
우리가 품격 있는 정신적 유산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선비정신은 선공후사(先公後私), 억강부약(抑强扶弱), 외유내강(外柔內剛), 극기복례(克己復禮) 등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며 사사로운 욕심을 억제하는 정신으로서 낡은 전통을 넘어 현대 민주사회에 여전히 들어맞는 사상이다. 이러한 선비사상의 정점에 남명정신이 있고 경의사상은 그 핵심이다. 경(敬)은 내적으로 자기성찰과 배음을 뜻하고 의(義)는 외적으로 드러내 옳게 행함을 뜻한다. 이러한 사상은 남명 외에도 많은 유학자들이 배움과 실천의 균형을 위해 중요시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유독 남명의 경의사상을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남명의 경의사상이야말로 언행일치, 즉 배운 바와 실천함이 같았기 때문이다. 남명의 실천사상을 ‘아래를 배워 위에 달한다’는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백성들의 현실과 동떨어진 형이상학적 관념론에 치우쳤던 다른 선비들과의 차별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조선의 기득권층 선비사회를 지탱했던 벼슬선비들은 경전을 날줄로 삼고 역사적 사실을 씨줄로 삼는 경경위사(經經緯史)의 방식으로 공부한 후 과거에 임하고 치인(治人)의 단계로 나아갔을 것이니 이들 또한 경의사상을 몰랐을 리 없다. 다만 출세에 눈이 어두웠거나 용기가 없었거나 애민정신이 부족했거나 하는 여러가지 이유로 배운 바를 밖으로 드러내 올곧게 주장하거나 실천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과 달리 남명은 조선중기 4대사화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혼란기에 과거공부를 접고 자신을 밝히기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돌아선 후 일평생 어려운 백성과 현실에 주목하며 왕과 조정의 혁신을 위해 목숨을 건 상소를 이어 나갔다. 명종 재임 시 단성현감의 벼슬을 제수받고 올린 일명 ‘단성소’에서는 왕을 고아로 최고실권자인 대비를 과부로 표현하며 조정의 무능과 부패를 극렬하게 일갈했고, 선조임금 시 올린 무진봉사는 재정을 출납하는 관리들의 폐단과 부패를 조목조목 밝히고 혁파를 주장한 바 이는 서리망국론으로 불리며 이후 306년 동안 조정에서 부정부패 경계와 청렴의 표상으로 인용해 왔다.

남명의 기개와 실천사상은 제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임진왜란 때 그의 제자 50여명이 선비의 몸으로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구하지 않고 모두 의병장이 되어 수많은 전과를 세워 국난을 극복하는 원천이 됐다. 이는 조선중기 주자학 위주의 주류학풍을 벗어났다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미구에 닥칠 전란을 예지해 제자들에게 천문지리, 병법, 의서 등을 가르친 남명의 혜안과 함께 사후 20년이 지나도록 제자들의 가슴에 실천정신에 대한 굳은 의지를 심어 준 선생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했는가를 새삼 짐작케 한다. 또한 선생이 남긴 작품인 ‘민암부’를 보면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늘 마음 아파하면서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백성이 곧 나라의 주인이다”는 혁신적인 정치관을 설파했다.

남명, 퇴계, 율곡 세분은 모두 선조임금 때 돌아가셨다. 선조는 남명에게만 사제문을 내렸다. “소자는 이제 누구를 의지하며, 백성들은 누구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까!” 임금이 남명에게 자신을 소자라고 칭하는 최고의 존경이 과하지 않을 만큼 조선중기 남명은 선비사회의 한줄기 빛이자 사상의 중심이었다. 남명의 제자들은 1608년 구국의 주체로서 광해임금과 함께 15년간 정치의 전면에 서서 명청교체기 실리외교, 자주국방, 대동법 시행, 동의보감 편찬 등 전란수습과 민생안정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으로 남명학파가 몰락하고 이후 일제 강점기 등 불행했던 역사에 묻혀 있다가 오늘날 학계의 연구를 통해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오게 됐다. 그 인고의 세월을 넘어 지식의 사회적 실천을 통한 언행일치, 진정한 기개와 용기, 공직자의 청렴, 실사구시 등 남명선생의 위대한 가르침은 우리나라의 중심사상과 정신이 될 것이라고 본다.



박태갑·한국선비문화연구원 사무처장
 
박태갑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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