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경남의 섬 (3)
[창간기획] 경남의 섬 (3)
  • 이웅재
  • 승인 2020.11.2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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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의 부활 남해군 노도
 
노도 임도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닷가. 이 바위에서 서포 김만중이 사색하고 낚시했다는 설이 있다. 일명 김만중 낚시터인 셈이다.
◇개요

서포 김만중 유배지로 널리 알려진 남해군 ‘노도(櫓島)’는 조선 중기의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한양에서 천사십오 리’로 기록돼 있다. 감히 한양을 넘볼 수 없을 만치 아득히 먼 곳 남해는 때를 잘못 만난 선비들에게는 ‘눈물의 유배지’였다. 고려부터 조선 말기까지 약 30명 정도의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남해에 유배됐는데, 그중 한 사람이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1637~1692)이다. 조선조 중벌인 ‘이천 리 유배지 형’에 해당하는 섬 남해에서도 떨어져 있는 작은 섬 노도가 ‘문학의 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노도는 경남 남해군 상주면에 딸린 섬으로, 면적 0.41㎢, 해안선 길이 3.13㎞, 실거주 인구는 11가구 16명이지만 대부분 고령이라 직접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주민은 5명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남해군 노도는 상주면 벽련항에서 1일 4회 운항하는 ‘노도호’를 타고 10여분 거리에 있다. 1985년까지만 해도 노도는 등잔불을 켜고 살았던 오지 중의 오지였다. 본래는 삿갓처럼 생겨서 삿갓섬이라고 불렀는데, 임진왜란 때 이 섬에서 노를 만들었으므로 노도라 명명했다고 한다.

한때 200여명을 웃도는 주민이 상주했던 노도가 소멸의 위기에 처하자 남해군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고 나섰다. 이곳으로 유배와 숨진 조선조 문신이자 국문학사에 길이 빛날 한글소설문학의 선구자이며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서포 김만중을 소재로 한 ‘노도 문학의 섬 조성사업’을 기획했다.

 
노도 문학의 섬 김만중 문학관 전경
◇노도 ‘문학의 섬’ 조성사업

남해군 노도는 올해 경남도의 ‘살고 싶은섬 가꾸기 사업 공모’에는 선정되지 못했지만 이 못지 않은 군 자체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남해군의 야심찬 기획이 섬 재생의 일익을 담당할지 관심사다.

남해군은 노도(상주면 양아리 산417-12 일원)에 총 1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김만중문학관과 김만중초옥, 작가창작실 3동, 구운몽원과 사씨남정기원 등의 야외전시장, 생태연못, 전망정자 등을 갖춘 ‘노도 문학의 섬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말 김만중문학관 일부를 임시 개관할 계획이다. 현재는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조형물로 장식된 구운몽원(園)과 사씨남정기원(園)이 개방돼 섬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구운몽원과 사씨남정기원은 서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소재로 꾸민 테마 공원이다. 군은 구운몽의 주인공 성진과 8선녀, 사씨남정기의 주인공 유씨와 사씨, 그리고 교씨 등의 특징이 잘 드러나도록 동상과 동판 등의 조형물을 제작해 공원 곳곳에 배치했으며, 각 조형물에는 제목과 함께 설명을 달았다.

남해군은 노도 문학의 섬이 본격 운영에 들어가면 관광객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벽련항-노도’ 접근성 개선에 나서 현재 1일 4회 도선 운항을 내년부터 6회로 늘린다. 장기적으로는 운항횟수 추가 증편과 관광유람선 유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

 
작가 창작실 3개 동
사씨남정기 조형물. story 12. 다시찾은 행복- 시련을 겪고 다시 만난 유씨와 사씨, 그리고 아들 인아를 조형물로 표현했다.
◇서포 김만중의 스토리텔링

서포 김만중은 조선 숙종 때의 서인으로 문장력이 매우 뛰어나 공조판서, 대사헌, 대제학 등을 두루 역임했지만 숙종의 세자 책봉 문제로 서인이 실각하자(경신환국, 1689) 노도에 유배됐다. 김만중은 노도에서 유배 생활 중 국문소설인 ‘사씨남정기’를 지어 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들은 후 숙종 18년,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사씨남정기에 앞서 지은 작품 구운몽을 두고 한글소설 또는 한문소설로 지었다는 등 설이 갈리고는 있지만 그의 유지(遺旨)로 볼때 굳이 한문으로 짓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서포만필’에서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적시했다.

남해군청년회의소는 ‘서포가 죽은 후 1692년(숙종 18) 4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묻혔던 곳’이라는 표지석을 세웠다. 서포 유허지는 노도 선착장에서 서포문학관으로 가는 길 중간쯤, 320여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있다. 개성으로 운구되기 전 잠시 묻혔던 곳으로 ‘허묘’라 했는데 서포의 ‘초장지’(初葬地)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맞겠다. 서포는 노도에서 3년 유배생활을 하다 숨졌다.

남해군은 김만중문학관에 관련 서적과 문장 등을 전시해 두고, 바깥 주위에 초옥과 샘터를 다듬었다. 고증에 따라 새로 지은 초옥은 세월을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서포가 직접 팠다는 샘터에는 약간의 흔적이 묻어난다. 서포는 자기가 판 샘에서 물을 마시면서, 솔잎 피죽과 해초를 채취해 먹으며 근근이 연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 말 전기수의 활약상

전기수는 조선 말기 소설을 실감나고 재미있게 읽어주는 이야기꾼이다. 예전 무성영화 때 변사가 화면 속 인물의 대사를 표현했다면, 전기수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활동사와 줄거리 전개를 맛깔난 말과 동작으로 주위 청자에게 전달했다. 재미가 한창 무르익을 때 이야기를 끊으면, 오늘날 관객, 당시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돈이나 물품을 제공하며 독촉했다고 한다. 경상도 말로 이바구로 먹고 산 조선의 만담꾼이랄까. 김만중 문학관 2층 별도의 공간(세책거리)에는 전기수가 갓 쓴 양반과 마을 주민, 바구니 든 아낙 등을 앞에 두고 설(說)을 푸는 장면이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팔지도 않고, 수리도 않는 노도 빈집
◇남해군의 고민

노도 문학의 섬은 오는 12월 문학관 일부 개관 등 시범운영에 들어간다. 군은 음식점과 숙박시설 등 각종 편의시설과 한려해상국립공원 내 화장실 등 편의시설 설치를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활동인구 5명 안팎에 불과한 원주민으로는 편의시설 제공은커녕 주어진 시설 관리도 벅차다. 특히 전 지역이 공원구역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편의시설 설치는 구두선에 그칠 공산이 크다. 당장은 물과 음료, 라면 등 최소한의 관광 지원책으로 무인판매기 설치 등 현실적 대안부터 강구하고 있다. 수익이 현실화될 때까지는 관의 지원으로 이끌어 갈 수 밖에 없는 처지인데, 외지인 유입이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겠다. 마침 남해군에는 팜프라, 돌창고 등 활용가능한 자원이 있다. 노도마을의 빈집은 양날의 검(劍)과 같다. 조금만 손보면 옛 맛을 살리는 볼거리로 충분히 활용 가능한 관광자원인데, 현실은 매입도 안 되고, 수리도 할 수 없다 한다. 소유주와의 긴밀한 협의 등 남해군의 고민거리다.

◇취재후기

남해군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노도 문학의 섬 조성사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골격은 어느정도 갖춰졌지만 내용적 측면에서 더 채우고 더 가꿔야 한다. 특히 국문학 전공자들이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필수코스로 자리매김하기엔 2% 부족해 보인다. 남해에 유배온 관리가 30여명이나 된다 한다. 이들의 작품도 관광자원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노도 문학의 섬이 ‘유배문학의 성지’로 가는데 인물과 장르의 다양성은 필요충분조건이다. 남해섬 옛 이름을 빌려 ‘화전별곡’을 지은 자암 김구(自菴 金絿, 1488~1534), 남해 풍물을 상세히 묘사한 풍물지 ‘남해견문록’을 남긴 후송 유의양(後松 柳義養, 1718~?) 등은 노도 문학의 섬이 채워가야할 소중한 자원이다.

또한 학문적 연구와 관광의 재미 등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겠다. 주어진 것만 즐겨라 식 하향식 관광은 고객만족에 한계가 있다. 스스로 만들어 가는 즐거움의 여지를 줘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구운몽원과 사씨남정기원의 부족함이 보인다. 만약 서포가 3차례의 유배 없이 계속 권세를 누렸다면 오늘날 문학의 대가로 주목 받을 수 있었을까. 그의 유배생활도 인생이다. 그의 일상을 구현해 이야기를 입히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몫이다. 일례로 서포가 사색하며 낚시했다는 일명 ‘김만중 낚시터’를 무대로 ‘갯바위 대나무 전통 낚시대회 개최’ 등 소재는 가꾸기 나름이다.

반가운 소식도 전해진다. 경남도가 올해 하반기 조직개편을 통해 섬 발전계의 기능을 강화해 섬어촌발전과를 신설했다. 그리고 정부도 ‘섬’ 담당 부처(課)와 진흥원 신설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직이 일한다’는 개념에 따라 ‘섬’ 담당부서와 전문가 조직 신설 등의 외연확장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으로 반길일이다.

황폐화를 넘어 소멸로 가고 있는 노도. 남해군이 펼치는 섬 정책이 기사회생의 묘약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본보 취재에 협조해 주신 남해군청 김지영 손영숙 최진호, 특히 이은식 경남도 문화재전문위원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웅재기자



 
노도 입구에 설치된 문학의 섬 상징 조형물
 
 
전기수와 마을 사람들.
 
초옥
 
김만중 유허지. 남해군청년회의소는 ‘서포가 죽은 후 1692년(숙종 18) 4월부터 같은해 9월까지 묻혔던 곳’이라는 표지석을 세웠다.
 
김만중이 직접 팠다는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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