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9]런던 내셔널갤러리2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9]런던 내셔널갤러리2
  • 경남일보
  • 승인 2020.11.2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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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대영제국 영광을 그리다

런던처럼 나른한 오후를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

전시관에서 잠시 빠져나와 허기를 채우고 지친 다리의 피로를 풀어 줄 카페를 찾았다. 차와 함께 주문한 스콘은 밀과 보리 등을 반죽한 빵의 일종이다. 단맛이 거의 없고 담백한 맛이 특징인 영국식 스콘은 미술관에서 그림에 집중하느라 소진된 에너지를 재빠르게 보충하기에 훌륭한 간식이 된다. 게다가 내셔널갤러리 안 카페의 스콘과 차는 런던에서도 맛있기로 소문나있다.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스콘 이었지만 그냥 먹기에는 매우 심심한 맛이었다. 곁들여 나온 딸기잼이 없었더라면 주먹보다도 작은 이 빵을 전부 남겨야 할 뻔 했다. 지친 피로는 스콘과 차가 아니라 잼이 풀어 주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한 단맛이 피곤을 깨트렸다. 다시 입장할 갤러리 안에서도 피곤을 풀어줄만한 달달한 그림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는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 윌리엄 터너의 그림 한 점을 만났다.

 

전함 테메레르

 


영국을 대표하는 상징물은 수없이 많은데 아이러니 하게도 영국 출신 예술가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위풍당당 행진곡’, ‘사랑의 인사’를 작곡한 에드워드 엘가가 번뜩 생각나긴 해도 베토벤, 모차르트 등 수많은 작곡가를 배출한 독일, 오스트리아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다. 하지만 영국에는 영국국민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화가가 한명 있다.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의 화가지만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손꼽힌다. 매년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화가에게 ‘터너 상’이 수여될 만큼 터너에 대한 인지도와 애정이 깊다.



◇영국이 사랑한 화가, 윌리엄 터너

일찍이 그림에 두각을 나타낸 윌리엄 터너는 26세에 영국에서 그림 좀 그린다 하는 화가들이라면 누구나 꿈꾸었던 로얄 아카데미의 최연소 정회원이 되었다. 젊은 나이에 화가로써 일찍 성공을 거둔 터너는 자연풍경을 주로 그렸다. 터너의 풍경화에는 빛이 여러 가지 색채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의 이러한 화풍은 모네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터너는 말년에 자신의 작품을 대중들을 위해 공개하기로 결정하고 영국에 기증했다. 작품들은 처음에 내셔널갤러리에 기증되었다가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1910년 테이트 브리튼으로 옮겨졌다. 덕분에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은 전 세계에서 터너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술관이 되었다. 터너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려면 작품수적으로 압도적인 테이트브리튼으로 가야 하지만 오늘날 터너의 작품 중에 가장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그림은 내셔널갤러리에 있다.

터너가 1838년에 완성한 ‘전함 테메레르’는 제법 많은 관람객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전함이라고 해서 늠름하고 거대한 배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전시관에서 마주한 테메레르호는 어둠이 찾아드는 해질녘 예인선에 이끌려 인양되고 있는 힘없는 배였다. 1789년 건조된 테메레르호는 1805년 나폴레옹의 군대와 맞붙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이 승기를 거머쥐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트라팔가 해전은 영국이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한 전쟁으로 영국은 이를 통해 해상강국으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터너는 세월의 힘을 못이긴 테메레르호가 전함의 소임을 다하고 해체를 위해 예인되는 모습을 아름다우면서도 힘 있는 풍경화로 나타냈다. 하늘 한가운데 솟아 있던 해가 주변을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이며 전함의 마지막 길을 밝혀 주는 듯하다. 연기를 내뿜으며 테메레르호를 인양하는 예인선은 영국이 산업혁명을 일으키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증기선이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만들어진 이 증기선은 새 시대가 도래 했음을 나타낸다. 테메레르호는 검정색 예인선과 대비되어 더욱 희미하게 보이지만 어쩐지 거무튀튀한 예인선에 비해 훨씬 기품 있어 보인다.


 
Self-Portrait c.1799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Accepted by the nation as part of the Turner Bequest 1856 http://www.tate.org.uk/art/work/N00458
Self-Portrait c.1799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Accepted by the nation as part of the Turner Bequest 1856 http://www.tate.org.uk/art/work/N00458

 


◇20파운드의 새 주인공

올해부터 20파운드 지폐에서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대신 터너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바뀐 지폐에는 터너의 자화상을 포함해 영국의 영광스런 한때를 상기시켜주는 그림 ‘전함 테메레르’가 자리 잡았다. 또한 지폐에는 1818년 터너가 한 강의 중에 말했던 ‘빛은 그러므로 색채다(Light is therefore colour)’ 가 쓰여 있고, 자신의 작품들을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유언장의 서명도 찾아 볼 수 있다. 영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그간 영국에서 발견된 위조 화폐의 80%가 20파운드였다고 한다. 이에 따른 대책으로 터너의 20파운드 지폐에는 무단복제가 불가하도록 위조방지기능을 보완했다. 그러니까 지갑 속에서 가짜 터너가 찍힌 20파운드는 찾기 힘들 예정이다. 갤러리를 빠져나와 어둑해지는 하늘을 배경삼아 테메레르호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아마도 영국인들은 테메메르호에서 영국의 찬란했던 과거와 오늘, 앞으로 그들이 나아가야 할 미래를 함께 본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세계에서 빛날 영국을 꿈꾸며 그 희망을 배에 함께 실었는지도 모른다.



주소: Trafalgar Square, London WC2N 5DN

운영시간: 매일 오전 11시~오후 4시

입장료: 무료

홈페이지: https://www.nationalgallery.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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