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32)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32)
  • 경남일보
  • 승인 2020.11.2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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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4)
한짓골에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임씨가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일을 하면서 유랑극단 소리꾼 여자를 흠모하며 살았다. 벌써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극장 근처 술집에서 예전 그 흠모하던 소리꾼을 만났다. 그의 집을 물어서 찾아갔고 소리꾼 여자는 몸이 성하지 않아서 남자의 보호를 받아야 할 처지에 있었다. 이를 보고 도와주며 정을 나누는 사이 동거를 하고 임씨는 소리 잘하는 딸 하나를 피붙이로 가졌다. 그후 여자는 건강해지자 유랑극단 단장과 눈이 맞아 달아나고 임씨는 딸 금화를 데리고 망목마을(한짓골 턱밑 마을)로 돌아왔다. 그런 뒤 건너마을 김첨지댁에 온 소리꾼에게 딸애 판소리 지도를 맡겼다. 소녀로 자라자 인물이 좋고 소리 잘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 금화가 이년 전 한짓골에서 어이없게 죽었다. 뒤늦게 한짓골 못둑으로 올라가 보니 신발 한 짝을 남긴 채 이미 죽어 있었다. 며칠 후 경찰은 금화가 바위 난간에 있는 철쭉을 꺾으려다 추락사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임씨는 이 일이 모두 외지에서 귀촌한 사람들 때문이라고 단정지었고 이후 귀촌한 사람들에게 적의를 품었다. 그러던 임씨는 노총각 태봉의 주선으로 사이비 교회 장로의 말에 속아 딸이 기도하면 다시 살아난다고 믿으며 논밭 팔아 교회에 바쳤다.

그때 민학의 아들 학민이가 갑자기 입에 거품을 품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이를 본 학의는 서울 무당 초의라는 친구를 불러내려 굿을 했으나 1주일 정도 조용하다가 다시 그 증세가 가시지 않았다. 무당 초의는 임씨의 딸 금화가 억울하게 죽어 그 영혼이 젊은 아이의 몸에 들어가 민학의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고 보았다.

그러다가 초이는 망목면 사무소 서하 주사와 민학의, 그리고 금화 죽음을 타살이 아니라고 수사했던 경찰관 등의 말을 듣고 금화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것에 확신을 가졌다. 그리하여 서울에 유명한 퇴마사와 그 일행들과 함께 한짓골에 와 퇴마의식으로 금화의 타살을 무속의 영험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6.25때 한짓골에서 학살당한 영혼들을 위한 해원의 굿을 함께 베푸는 의식을 당사자와 전 동네 주민들이 참석하는 가운데 가지고자 했다.

이 퇴마의식으로 타살한 범인은 총각 태봉이와 이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양민들의 억울한 죽음이 일거에 해원의 굿으로 달래주게 된 것이다.

소설은 이 대단원이 갖는 무속적 전문성으로 소설 이상의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필자는 무속의 그 깊이를 잘 모른다. 그리고 시로써 그 세계를 잘 표현한 사람이 박재릉 시인이었다. 한 때 박 시인은 이런 시를 월간 <시문학>에 연재하여 시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필자가 지적해 볼 것은 작가가 마지막 장면에 초동 수사를 엉터리로 한 망목경찰서 형사가 임석했는데 그가 무슨 일을 하기 위해 그 자리 있었는지 그것이 애매했다. 그리고 지명의 망목이 면(面)인지 군(郡)인지 그것 또한 체계가 애매한 것이 드러났다. 아마도 귀촌한 지 얼마되지 않아 시골 행정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구성이나 입담이나 특히 양심선언한 박씨의 부친 이야기 등은 탁월한 이인규 소설의 몫이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로써 한짓골과 망목마을이 모처럼 평화를 얻었다. 그러나 소설이 아닌 자리에 놓이는 <산청함양사건>의 유족들은 그리고 <거창사건>의 유족들은 오늘도 다시 대한민국 국회를 향해 “의원님들 이번 국회에서 만은 보상법이 통과되도록 해 주십시오” 손이 다 닳도록 빌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위령제를 맞아 다음과 같이 시를 썼다. 시 제목은 <4년의 환승역에서>이다. “국민의 삶을 실어나르는 열차, 국회는 / 또 4년의 환승역을 지난다.//역에는 맨드라미도 피고 코스모스도 핀다/ 꽃은 꽃이라서 환히 피어나고/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한다//그러나 그러나/ 열차는 하중이 늘 무거운지/ 피어난 꽃을 외면한 채/ 달리고 또 달리지만 지리산 환승역에서는 그냥 지나가거나/ 외면한 채 지나가기 일쑤다// 지리산은 그때의 사건을 등에 지고/ 열차의 꽁무니에 매달려 아슬 아슬/ 4년의 공허로 달려 나간다// 환승역에 가까워질 때 마다 또 한 번/경적소리만 들려올 뿐 매달린 지리산 사건은/ 폐기의 대상으로 일단/ 하차하는 것이다// 하차하고 또 하차하고/ 그 하차한 것은 짐짝이 되어 나라의 커다란 적폐가/ 된다/아, 국회여 열차여 돌고 도는 것이 그대 임무라지만/ 적폐를 가득 싣고 또 4년을 바라보는 /승객들은 그때 그 사건의 총소리를 환청으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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