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귀향
아름다운 귀향
  • 경남일보
  • 승인 2020.11.2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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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란 수필가
 
 
경이와의 긴 수다이다. 미국에서 전화가 오면 휴대폰을 길게 잡고 있다. 대체로 내가 하는 것보다 경이가 전화를 하는 편이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아무래도 고국을 등지고 살다 보니 더 많이 외로울 것이다. 바로 밑의 막냇동생 경이는 결혼 이듬해에 남편이 있는 미국에 이민을 했다. 경이를 떠 올리면 노천명의 ‘사슴’이 생각난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사슴처럼, 목선이 길고 눈망울이 깊은 그 애는 조용하고 선(善)했다.

간호사로 병원에 근무할 무렵이었다. 환자로 왔던 손님이 동생을 눈여겨보고 외국에 있는 아들을 소개해 며느리로 삼았다. 경이는 결혼하여 스물일곱에 여행용 가방 하나를 들고 가족들을 뒤로한 채 뉴욕 행 비행기를 탔다.

삼십여 년의 세월 동안 두 번 고국을 다녀갔다. 처음 한 번은 남편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갔다면, 나머지 한 번은 딸아이와 아내를 버리고 카드빚만 잔뜩 남기고 한국으로 달아난 몰염치한 남자를 두고 미련 없이 이혼장에 도장을 찍고 돌아갔다. 어떻게, 나무랄 데 없는 착한 막내에게 가혹한 고통이 따르는지, 불가사의한 의문이 들곤 했다. 하지만 누구나 삶이 평탄하게 이어지는 것만은 아닐 진 데, 고통 속 고난은 막내의 몫으로 감내하며 이겨내야만 했다.

지금은 뉴저지에 거주하고 있는 경이는 딸아이와 씩씩하게 ‘네일아트’ 샵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 들어가서 처음 배운 일이 네일아트였다. 손을 많이 쓰는 직업이라 유난히 굵어진 양 어깨의 팔뚝은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렸는지, 환히 알 수 있다. 딸아이를 데리고 홀로 이국땅에서 네일 가게를 운영하는 막내가 장하기만 하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카는 한국어보다는 영어에 익숙한 세대로, 예술 감각이 뛰어나 ‘네일 아트’ 디자이너로 탑을 이루고 있다.

막내는 일선에 물러나 적어도 2년 후면 고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얼마 전부터 가게를 딸에게 맡기려고 차근차근 준비한다. 죽을 때는 어머니가 계시는 선산에 묻히고 싶어 삼십 여만의 귀향이다. 물살을 거슬러 모천으로 돌아가는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인간 또한 죽을 때는 고향산천을 그리워하며 자연으로 돌아간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텃밭은 묵정밭이 되었다. 남은 인생을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꽃을 심고 채소밭을 가꾸며 고요하게 살아가는 게 우리 자매들의 꿈이다. 어머니의 빈집에 봄을 기다리듯, 막내와의 해후를 손꼽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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