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2월의 겨울
잃어버린 12월의 겨울
  • 경남일보
  • 승인 2020.12.0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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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량 (동랑청마기념사업회 이사)
 

 

겨울의 시작점이 사라졌다.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다가도 겨울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은 12라는 숫자를 마주하게 되면서부터다. 12월이 여느 계절과 다른 것은 후회와 자책, 희망과 설렘의 이중적 감정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대책 없는 시간을 보냈다는 자책 속에서도 마지막 남은 시간의 갈무리를 생각하고, 새해 향한 희망을 가슴에 품기도 하는 것이 12월이다.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기까지 나를 내팽개치지 않고, 무사히 한 해를 살아낸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된다. 감사의 마음과 함께 우리를 더욱 설레게 하는 것은 12월의 풍경이다. 삭막한 무채색의 계절에 분위기를 한껏 살려놓는 것이 특징이었다. 네온사인의 화려한 간판과 별의별 모양의 크리스마스트리 조명은 나이조차 잊게 만든다. 대책 없는 설렘이다. 사람들 틈에 섞여 색색의 불빛들을 눈 속에 담으며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행복했다. 종교와 상관없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신나는 겨울의 시작풍경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겨울은 조용해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가을은 벌써 저 만치 멀어졌는데도 겨울을 받아들일 시작점을 잊은 것이다. 고양이 발자국처럼 조용히 맞이한 겨울은 우리의 열정과 희망까지 잠재웠다. 거리의 불빛이 채워지지 않은 곳에 어둠이 자리 잡았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지 않는 거리는 우리의 귀까지 닫게 만들었다. 종내는 마음의 빗장까지 단단히 채우게 됐음을 느끼게 된다.

살다보면 분위기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던가. 애틋한 사랑의 감정도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부부간의 사소한 싸움도 눈치 없는 분위기에서 시작되기 일쑤다. 비단 이렇게 사소한 것뿐이랴. 지자체마다 크고 작은 규모의 축제가 열리지만 축제의 성패도 분위기에 달렸다. 사람들의 관심과 발길을 붙들어두기 위해서는 눈길을 끌만한 무언가가 있어야한다. 비어 있어도 요란하고, 별게 아닌데도 그럴듯하고, 볼게 없어도 그냥 기웃거리게 되는 것이 축제의 분위기 탓 아니던가.

대형백화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까지는 접어두더라도 작은 구멍가게에서 새어나오는 캐럴이라도 들으며 흥얼거리고 싶다. 그렇게 겨울이 살아나면 좋겠다. 한해의 끝점인 12월이 느껴지면 좋겠다. 추억의 캐럴송이 흘러나오는 거리를, 털이 보송한 싸구려 목도리라도 하나 사서 두르고, 뜨거운 군고구마 호호 불어가며 12월의 거리를 걷고 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12월이 없다. 조용하면 조용할수록 겨울은 더 추워지고 있다.

고혜량/동랑청마기념사업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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