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여행밥상]원조 양평해장국
[박재현의 여행밥상]원조 양평해장국
  • 경남일보
  • 승인 2020.12.0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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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은 몰라도 양평해장국은 안다
 
[박재현의 여행밥상]원조 양평해장국



해장국은 전날 술을 과하게 드신 분들이 속 쓰림을 풀기 위해 찾는 아침 국이다. 해장국에도 사람 취향 따라 다양한데, 전주의 콩나물국이 유명하다. 우거짓국도 있고 미역국도 있고 종류도 다양하지만 아무래도 해장국 하면 아스파라긴산이 많이 함유된 콩나물국이 숙취 해소에 탁월한 건 누구나 아는 사실, 그래서 콩나물이 들어간 해장국이 단연 해장국으로 유명할 수밖에 없다.

해장국은 시원해야 한다. 뜨거운 국물인데, 그게 목을 타고 들어가면 시원한 느낌을 준다. 뭔가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랄까. 양평해장국이 그렇다. 선지가 들어가고, 양이 들어가 씹는 맛도 있으면서 영양도 가미하는. 그래서 과음으로 피로한 몸을 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해장국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양평해장국이 그렇다.

지금은 어느 지방을 가나 양평해장국 집이 지천으로 많아 어느 집이 원조인지, 또 시원한지 그 맛이 그 맛일 텐데, 그렇지 않은 집이 아무래도 원조집이다. 경기도 양평은 조사차 가는 곳이다. 이따금 일 때문에 가는 곳이고, 예전 친구가 살던 곳이라 양평해장국 원조집을 가 본 기억이 있어 함께 조사하던 양평 관계자에게 원조집을 물었다. 몇 년 전 식당에 불이 나 옮겼다고 한다. 불이 났다면 재난이지만 더 잘 되는 거 아닌가요 하고 물었더니 지금은 가게도 넓히고 손님이 더 많아졌다는 거다. 속설이지만 불이 나는 꿈을 꾸면 부자가 된다는 설이 맞긴 맞는가보다 싶어 들어가 보니 손님이 바글바글이다.

 
 
양평해장국을 시켰다.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는 국물이 삼복더위에 이열치열을 생각게 한다. 크게 썬 선지가 그릇 한가운데 자리하고 숨겨져 있다. 뒤적거리니 오톨도톨 양이 큼지막이 썰어져 들어있고 양도 많다. 선지의 부드러움과 양의 거친 면과 그 뒤의 부드러운 고기 맛이 일품이다. 물론, 국물 맛도 시원하고 깔끔하다. 예전 처음 먹었을 땐 국물이 너무 진해 느끼함도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서일까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맛으로 변한 느낌도 든다. 콩나물이 서걱거리며 씹는 맛을 더해준다.

해장국 뚝배기 한 그릇이면 해장술로 소주 두 병은 너끈히 까고도 남을 듯하다. 다시 술을 끌어당기는 맛이고 보면 해장국이 맞긴 맞는가 보다. 밥은 조금만 말아도 배부르다. 양의 넉넉한 씹힘과 선지의 부드러움, 그리고 콩나물의 서걱거림이 입안에서 조화를 부린다.

고추 장아찌 다짐을 국물에 넣으면 짜진다는 문구가 벽을 장식하고 있다. 예전엔 이걸 넣지 않아도 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조금만 넣어도 짜다는 느낌보다는 감칠맛을 더해주기에 따라 나오는 것 같다. 길게 썬 깍두기는 잘 익었다. 달착지근 해장국의 섬섬한 맛을 배가시킨다.

동네마다 있는 양평해장국 집은 어느 집이나 맛이 비슷하고, 뚝배기에 들어간 양이나 선지가 적어 아쉬웠는데, 과연 원조집은 다른 게 있다. 푸짐하다. 국물이 모자랄 듯도 싶지만 그렇지 않다. 양과 선지 그리고 덤 같은 콩나물을 다 먹으면 배가 그득하다.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싹 비워내면 땀이 송송 이다. 이 맛에 해장국을 먹는 거라는 생각을 다시금 일깨우는 맛이다.

 
 
 
50년을 한결같이 한 가지 음식으로 승부를 봤으니 그 내공이 오죽하랴. 눈 감고도 맛을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다. 식당 한편에선 양을 썰고 있다.

손님이 마구 밀려드니 주문은 간단하지만, 계산부터 한다. 나중에 계산이 복잡하고 손님이 기다리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다. 물론, 계산을 빠트릴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선 결재. 좀 차가운 느낌이지만 편리를 위해서라면 그게 나을 수도 있다.

해장국와 해내탕 등 몇 가지가 전부다. 막걸리도 싸다. 아무래도 해장국엔 소주 한두 잔이 곁들여져야 안주 삼아 양이니 선지가 더 맛나다. 손님 취향 따라 술도 마시는 거지만, 찬은 자기가 떠와야 한다. 그만큼 주문이 쇄도하기 때문이다.

해장국 맛은 역시 국물맛이다. 오래전 처음 여길 왔을 땐 젊은이들이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젊은이들이 더 많다. 그만큼 맛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면서도 그 진한 정도를 완화해 놓은 덕일 거다. 짠맛도 요즘 흐름에 맞춘 걸 거다. 그러니 옛 생각이 그리운 사람을 위해 고추 장아찌 다짐을 내놓는 걸 거다. 짜게 먹지 않는 방향을 선택으로 바꾼 거다.

해장국도 이젠 술국의 범주를 넘어섰다. 특별한 음식으로 탈바꿈한 거다. 국물만 맛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는 재료가 얼마나 푸짐하고 맛나냐는 것으로 특별한 맛을 우려내야 하는 거다.

50년을 넘게 음식을 우려낸 주인은 작년에 돌아가셨단다. 그렇다고 그 맛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맛으로 자리매김했을 뿐이다. 얼큰한 국물맛에 선지와 양 그리고 콩나물이 듬뿍 들어가 한 그릇 비우면 배도 넉넉하게 부른 서민 음식이면서도 고급음식으로 탈바꿈했다. 원조의 맛은 따라갈 수 없는 특별한 맛이 있기에 추억과 깊이가 있다. 한국전쟁에서나 썼을 법한 철모와 반합 수통이 장식장 한 칸을 차지한 걸 보니 원조 집의 역사를 대변하는 것 같다.

※ 양평신내서울해장국 :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신내길 16(공세리 327-8)

- 연락처 : 010-5266-0943, 031-773-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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