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토성 범위 구체화 실마리
김해시는 봉황동 유적(국가사적 제2호) 남쪽에서 가야시대 봉황토성(土城) 일부(내·외벽)가 발굴됐다고 3일 밝혔다.
이번 발굴은 그동안 추정만 해왔던 봉황토성 남쪽 범위를 명확히 진단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계에서는 가야시대 토성이 서민, 귀족, 왕의 생활터전을 타원형으로 보호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만큼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가야 왕궁터’ 발굴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김해시는 지난해 11월부터 봉황토성 남쪽 중앙지점(봉황동 240번지 일원) 265㎡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해 왔다. 발굴은 (재)한화문물연구원이 맡았다.
이번 조사구간에서 확인된 성벽의 바닥 너비는 13.1m, 상단 너비는 8.6m이며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내벽부 0.9m, 외벽부 1.7m 정도이다. 외벽의 돌이 15단 정도 덮여 있고 내벽은 돌들이 5단 정도 남아 있다.
토성 구조는 목탄과 패각 등으로 인위적으로 다짐해 대지를 조성한 층(해발 2.4m)위에 점성이 강한 적갈색 점토와 혼토패각, 소성토 등의 흙을 섞어 자연 경사면을 따라 겹겹이 쌓아 성의 성토부를 만든 후 내벽과 외벽에 돌로 덮고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대지 조성층에서는 직경 6~10cm 내외의 탄화된 나무기둥과 바로 세워서 땅에 파묻은 토기 항아리 2점이 조사됐다.
이 항아리는 대지 조성 또는 성 축조 당시 의례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03년 조사에서는 봉황토성의 내·외벽이 북동쪽 구간에서 일부 조사됐고 2014년에는 북동쪽 구간에서 외벽 일부가 확인됐다. 올해 2월부터 7월까지 조사한 남서쪽 구간인 옛 봉황초등학교 부지에서 는 토성의 외벽시설이 넓게 조사됐다. 그간의 조사 성과와 토성의 성토부에서 4~5세기대 토기들이 조사됨에 따라 금관가야 토성으로 판단했다.
시 관계자는 “이러한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국가사적과 보호구역 확대 지정 등을 추진해 봉황동 유적의 보존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박준언기자
이번 발굴은 그동안 추정만 해왔던 봉황토성 남쪽 범위를 명확히 진단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계에서는 가야시대 토성이 서민, 귀족, 왕의 생활터전을 타원형으로 보호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만큼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가야 왕궁터’ 발굴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김해시는 지난해 11월부터 봉황토성 남쪽 중앙지점(봉황동 240번지 일원) 265㎡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해 왔다. 발굴은 (재)한화문물연구원이 맡았다.
이번 조사구간에서 확인된 성벽의 바닥 너비는 13.1m, 상단 너비는 8.6m이며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내벽부 0.9m, 외벽부 1.7m 정도이다. 외벽의 돌이 15단 정도 덮여 있고 내벽은 돌들이 5단 정도 남아 있다.
토성 구조는 목탄과 패각 등으로 인위적으로 다짐해 대지를 조성한 층(해발 2.4m)위에 점성이 강한 적갈색 점토와 혼토패각, 소성토 등의 흙을 섞어 자연 경사면을 따라 겹겹이 쌓아 성의 성토부를 만든 후 내벽과 외벽에 돌로 덮고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대지 조성층에서는 직경 6~10cm 내외의 탄화된 나무기둥과 바로 세워서 땅에 파묻은 토기 항아리 2점이 조사됐다.
이 항아리는 대지 조성 또는 성 축조 당시 의례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03년 조사에서는 봉황토성의 내·외벽이 북동쪽 구간에서 일부 조사됐고 2014년에는 북동쪽 구간에서 외벽 일부가 확인됐다. 올해 2월부터 7월까지 조사한 남서쪽 구간인 옛 봉황초등학교 부지에서 는 토성의 외벽시설이 넓게 조사됐다. 그간의 조사 성과와 토성의 성토부에서 4~5세기대 토기들이 조사됨에 따라 금관가야 토성으로 판단했다.
시 관계자는 “이러한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국가사적과 보호구역 확대 지정 등을 추진해 봉황동 유적의 보존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박준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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