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49] ‘죽음을 부르는 산’ K2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49] ‘죽음을 부르는 산’ K2
  • 경남일보
  • 승인 2020.12.07 18: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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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그 산에 동지를 묻다
2008 플라잉점프 한국 원정대 3명 눈사태 사망
8월 1~2일 이틀간 산악인·셰르파 등 11명 참사
1986년 세계 산악인 13명 목숨 잃은 비극의 산

 
K2 정상에 선 박경효 대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내 아들아, 너무 일찍 갔구나…. 세월이 가면 잊혀지겠지만 잊혀진다는 게 더 슬프구나.”

“산이 좋아 산이 되었기에 이제는 보내주려 합니다.”-2008년 8월 16일 유족들의 마지막 인사.



2008년 경남 산악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K2 원정대가 구성됐다. 원정대는 2007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힘을 얻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K2에 도전장을 던졌다.

김재수 대장을 비롯해 김성상 부대장·황동진 등반대장·손병우·고미영·김훈하·김효경·박경효·이승록·김태규 대원이 참여했다. 2007년 국내 여성 가운데 최고령(59세) 에베레스트 등정자인 송귀화씨는 의료지원으로, 이원섭씨(70세)는 행정지원으로 참가했다.

원정대는 5월 23일 함안에서 발대식을 갖고 5월 27일 파키스탄으로 향했다. 그들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행정 절차를 밟고, 스카루드에서 식량과 장비를 최종적으로 구입했다. 지프 카라반과 도보 카라반을 통해 6월 15일 베이스캠프(4900m)에 도착했다.

 
2008년 5월 23일 함안문화예술회관 K2 발대식
 
한국 등 9개국 원정대 몰려

K2 베이스캠프에는 한국원정대를 비롯해 유럽에서 프랑스·스페인·네덜란드·이탈리아·세르비아, 미국과 싱가포르까지 9개 나라의 원정대가 모였다. K2는 지난 5년간 날씨가 좋지 않아 등정자가 한 명도 없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각국 원정대는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등정에 꼭 필요한 날씨 정보를 알기 위해 분주했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원정대는 노멀루트인 아브루치(남동릉)를 통해 정상에 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원정대는 많은 산악인이 한꺼번에 정상으로 가면 가장 위험한 구간인 보틀 넥 구간에서 정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하면 눈사태 위험이 높다고 판단,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각국 원정대는 등정에만 급급하면서 자신들의 역할을 대부분 무시하면서 대형 참사가 일어나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한국 원정대는 6월 23일 1캠프(6150m)를 구축했으며 이틀 뒤 2캠프(6700m)를 설치했다. 대원들은 1~2캠프를 오가며 고소 적응을 반복하며 컨디션 조절에 들어갔다. 7월 6일 3캠프(7400m) 텐트를 세웠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7월 10일 잠시 날씨가 좋아져 등반에 나섰지만 강풍으로 다시 후퇴했다.

D-day 7월 31일…30여 명 정상으로

각국 원정대는 기상 정보를 분석한 결과 7월 31~8월 초에 날씨가 좋아진다는 것에 의견을 모으고 정상 공격 날짜를 7월 31일로 정했다. 김재수 대장 역시 대원들에게 등정 계획을 발표했다. 7월 27일 김재수 대장과 고미영, 황동진, 김효경, 박경효 등 대원들이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원정대는 서로 합의에 따라 세르비아 원정대 고소포터가 로프를 깔며 전진했다. 그러나 세르비아 고소포터가 2캠프에서 폐수종으로 하산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네덜란드 원정대가 엄청난 장비와 인력을 투입하고 로프를 설치했다. 다음날 캠프2에 도착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하루를 머물고 8월 30일 3캠프로 진출했다. 7월의 마지막 날 대원들은 8000m 지점에 도착했다. 김재수 대장과 고미영 대원이 눈과 얼음을 깎아내 어렵게 4캠프를 구축했다.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캠프가 만들어진 것이다.

4캠프에는 한국을 비롯해 세르비아·미국·네덜란드·이탈리아·노르웨이·프랑스 대원들과 셰르파, 고소포터까지 합쳐 30명이 도착했다. 전체 800m의 로프가 필요했지만 740m 밖에 갖고 오지 않아 로프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결국 4캠프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에만 고정 로프를 설치하고 등반을 계속하기로 했다.

8월 1일 새벽 3시 정상 공격에 나섰다. 김재수 대장과 고미영·김효경 대원이 먼저 출발했고 다른 원정대가 뒤를 따랐다. 황동진 등반대장과 박경효 대원은 이들보다 조금 늦게 마지막 캠프를 출발했다.

 
K2 등반 당시 황동진(왼쪽) 김효경(오른쪽) 박경효
정상에 선 5명…목숨 건 하산

2008년 8월 1일 오후 5시 40분 세계 2위봉 K2(8611m) 정상.

‘죽음을 부르는 산’으로 악명 높은 그 산 정상에 김재수, 황동진, 김효경, 박경효 대원이 있었다. 대원들은 정상에서 함께 웃으며 등정의 기쁨을 만끽했다. 오후 7시 10분 정상을 떠났다. 힘든 하산길이었지만 오후 9시 해발 8200m에 위치한 보틀 넥(Bottle neck) 구간에 도착했다. 보틀 넥은 협곡 지역으로 경사가 심하고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 고정 로프 없이는 사실상 등반이 불가능한 구간이다. 대형 눈사태가 나면서 로프가 사라져 대원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밤 11시 황동진 등반대장은 4캠프에 있던 대원들에게 이 사실을 무전으로 알렸다. “하산하고 있다. 장시간 등반으로 많이 지쳤다. 탈수 증세가 심하다. 따뜻한 물이 필요하다.”

4캠프에 있던 대원들은 물을 끓였다. 밤 11시 20분 2명의 셰르파에게 따뜻한 물과 음식을 보냈다.

8월 2일 새벽 1시. 황동진 등반대장과 김효경, 박경효 대원이 보틀 넥 구간에 도착했다. 김재수 대장은 새벽 1시 30분께 보틀 넥에 도착한 후 노르웨이 원정대가 설치한 임시 로프를 이용해 내려왔다. 로프가 없어진 구간은 피켈 한 자루에 의지해 하산했다. 새벽 3시 김재수 대장은 협곡 아래쪽에서 셰르파를 만났다. 그는 “대원들이 하산하고 있다. 계속 기다리고 있다. 물과 음식을 제공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새벽 4시 4캠프에 도착했다. 뒤따르던 고미영 대원은 길을 잃고 1시간 30분을 헤매다 셰르파들의 도움으로 4캠프로 하산했다.

 
K2 보틀 넥 지역에 있는 거대한 얼음 기둥의 위압적인 모습. 왼쪽 위로 산악인들이 오르고 있다.
대형 얼음 탑 붕괴…대원 3명 실종

그러나 나머지 대원들은 아침 해가 떴지만 도착하지 못했다. 카메라로 확인한 결과 보틀 넥 상단에 한국 대원 등 8명이 고립되어 있었다. 4캠프에서는 파상·치링 셰르파에게 의료용 산소를 갖고 현장으로 보냈다. 4캠프에 있던 손병우·이승록 대원도 곧바로 출발했다. 오전 10시 30분 셰르파들은 대원들과 대화할 수 있는 거리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바위에 가려 얼굴은 보지 못했다.

낮 12시 30분. K2를 뒤집을 듯한 굉음과 함께 대형 빙벽이 무너졌다. 보틀 넥 상단에 있던 대원 3명이 크레바스로 추락했다. 바로 황동진·김효경·박경효 대원이었다. 오후 1시 30분 대형 눈사태가 스쳐 지나갔다. 구조하던 한국팀 셰르파 2명이 휩쓸리고 말았다. 오후 2시 45분 추가 눈사태 징후가 곳곳에 나타나자 구조대는 안전한 곳으로 물러났다. 짙은 안개와 강한 바람이 K2를 감싸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접한 파키스탄 정부는 헬기를 보내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8월 3일 독일과 이탈리아 산악인 2명이 생존한 것을 확인했지만 구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국 원정대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대원들의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원정대는 유족들에게 사고 소식을 전하고 철수를 준비했다. 2008년 K2는 11명의 산악인과 셰르파들을 품었다.

시신 없는 눈물의 영결식

경남산악연맹은 창립 이후 가장 많은 3명의 대원을 잃었고, 슬픔에 빠졌다. 경남연맹은 20년 이상 히말라야를 등반했던 황동진 등반대장(45)과 성실함과 실력을 인정받은 김효경(33)·박경효(29) 대원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들의 영결식은 2008년 8월 16일 김해의 한 병원에서 유족들과 산악인들의 오열 속에 거행됐다.

당시 빈소를 찾은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유족들을 위로했다. 창원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경남에너지는 대원들의 사고에 깊은 애도를 표현하며 3000만원을 기탁,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당시 위로해준 경남에너지 정연욱 대표이사, 강만호 부사장 등 모든 임직원 여러분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취지문

사람이 가질 수 없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남들보다 더 천천히 시간이 지나가는 시계일 것입니다.

2007년 플라잉 점프 원정대가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고 온 지가 벌써 1년을 넘겼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뒤처지지 않으려 원정 기간의 공백을 메우며 지금에 이르렀고, 지난날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으며 되돌아보아 아쉬움 없기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산중의 왕 하늘 아래 ‘절대군주’라 부르는 그곳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주위의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진실된 우리가 될 것이며 양적인 풍요로움보다 질적인 행복을 추구하며 또 한번의 진한 우정을 확인하려 우리는 K2로 떠납니다.

2008 플라잉 점프 K2 원정대원 모두는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한분 한분의 소중한 마음을 깊이 새겨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등반에 임할 것입니다.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여러분의 도움에 보답하겠습니다.

2007년과 2008년 플라잉 점프 원정대를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2008년 5월 23일

K2 원정대장 김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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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나 2020-12-08 15:26:53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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