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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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0.12.1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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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6)
김성진의 수필 중에서는 수필집의 표제 <그는 이메탈을 닮았다>가 우수작으로 읽힌다. 이메탈은 하회탈 중 턱이 없는 탈을 말한다. 탈 자체가 얼굴을 숨기고 변장하는 것인데 턱이 없으니 인물의 이중성 더 너머까지 갈 수 있는 탈이다.

이메탈을 닮은 사람은 거지인데 아니 구걸하러 오는 사람인데 올 때마다 똑 같은 복장으로 똑 같은 레파토리로 말을 한다. “가족도 없는 장인인데요 배가 고파 그러니 천원만 꾸어주세요.” “빨리 취직해서 갚겠습니다.” 화자는 매출이 부진하여 폐업을 고려하고 있을 때라 버럭 화를 내고 돌려 보냈다.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오히려 편하게 느껴진다. 웬지 행복해 보인다. 그 당당함이 스님들의 탁발을 연상시킨다. 스님을 두고 걸사(乞士)라 하니 구걸하는 선비일 것 같다.

화자는 구걸의 종류에 두 가지가 있다고 든다. 첫째는 무턱대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고 둘째는 물건을 내놓고 구매를 요구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조잡헤도 ㅤ물건을 넘기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것은 구걸은 아니다. 어려운 형편에 생활비나 학비를 대기 위한 아르바이트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화자는 굳이 그런 사람들까지 구걸로 간주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동안 구매를 한 물건은 전기 면도기, 벨트, 칫솔, 칼 등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화자는 그것들이 정상으로 씌어지는 예를 볼 수가 없었다.

화자는 구걸도 오늘날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한다. 직장생활할 때 일본 출장을 몇 번 갔었는데 긴자거리에서 였다. 소규모 공연이 많았다. 공연자들은 모금함을 앞에 놓고 노래나 연주 등의 퍼포먼스를 제공하며 당당히 관람료를 바랐다. 꼭 강요하는 형식은 아니었다. 가치를 느끼는 만큼 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연자도 구걸하고 있는 자다. 그런데 이들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화자는 걸인도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라면 그들에게 적선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여기서 화자는 유튜브의 크리에이터가 온갖 퍼포먼스로 구독이나 좋아요를 구걸한다. 욕망이 있어야 요구가 있고 요구가 있어야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화자는 삶에서 모든 욕구는 구걸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이라며 천원만 달라는 말,얼마나 솔직한가. 가진 것도 없고 몸도 아프니 능력 있는 분이 조금만 나누어 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꼭 강요한 말이 아니다. 위선의 공인이 국민에게 민심을 구걸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솔직하지 않은가. 화자는 이를 두고 허울과 위선으로 사는 이들에게 거만하지 말라는 역설의 충고라고 말한다.

이 수필은 주제가 참신하다. 남이 잘 건드리지 않는 구걸이라는 주제를 놓고 그 종류를 짚어보고 그 주변에 있는 위선을 따져보고 있다. 수필의 제목에서 ‘이메탈’을 끌고 온 점이라든가 구걸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넓혀나가는 대목에서 ‘좀 심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 상식 뒤집기로 문맥 자장을 긴장의 끈으로 두른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수필가는 실험성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김성진은 수필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수필 가운데 <귀천(歸天)>이 나온다. 혹 천상병의 <귀천>을 두고 수필을 쓰는가 보다 했는데 김성진의 자작시 <귀천>이었다. “앞서가는 트럭이 꽉 찬 만원이다/ 말똥 말똥 눈알들이/ 처음 보는 세상 구경에 정신이 없다// 내 귀에 캔디, 내 귀에 호동이,/내 귀에 노란 이름표를 달고/ 소풍을 가는가 보다// 4번 명찰을 단 한 놈이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덜컹거리는 요동이 재미 있는지/ 히쭉 히쭉 웃고 있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그들과 헤어진 후/ 제일 크게 웃던 그놈을 다시 만난 건/ 산악회 창립기념일이었다. // 깨끗이 면도한 그놈은 제상 위에 앉아/ 흰 봉투 입에 물고 히쭉이 웃고 있다/ 우리는 일제히 큰 절을 올렸다// 소풍은 잘 다녀 오셨습니까? (<어떤 소풍>)

앞서가는 트럭이 꽉 찬 만원이다. 말똥말똥 눈알들이 세상 구경에 정신이 없다. 노란 이름표를 달고 소풍을 가는가 보다. 입은 옷이 없어 명찰은 귀에다 달았다. 맨 뒤쪽의 한 놈과 눈이 마주쳤다. 유난히 입이 큰 놈이 뭐가 좋은지 웃고 있다. 돌아오지도 못할 외출인지도 모르고 즐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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