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날 생일의 행복
그믐날 생일의 행복
  • 경남일보
  • 승인 2020.12.1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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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남해군 문화관광과)
 

 

음력 시월 그믐, 남편의 생일이다. 생일날은 미역국을 먹어야 인덕이 있는 거라던 친정엄마의 그림자를 따라 나도 생선미역국을 끓였다. 엄마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준비하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중요한 하나는 마른미역 쟁여두기였다.

생일날은 주인공보다 먼저 식탁에 올렸고, 며느리들과 딸들이 보름달 같은 배를 누이고 몸을 풀 때도 미역국을 우선 끓였다. 결혼한 언니는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네에 갱번(바닷가)이 열리는 날이면 미역을 따고, 조개를 캐고, 굴을 주워 갯가 것들이 귀한 친정에도 가져왔다. 어쩌다 공휴일이 걸리면 바다체험을 하러 갔는데, 손도해협이라 부르는 그곳은 어찌나 물살이 빠른지 물길에 따라 미역은 나풀나풀 유연하게 춤을 추고, 멸치 떼는 잽싸게 죽방렴으로 몰려들었다.

미역은 바닷바람과 햇살을 받아 바스락거리며 건조되어 영양분을 가득 품고, 죽방렴에서 건져 올려 급히 삶아낸 멸치는 마른 몸으로 최상의 칼슘 보고가 되어 비싼 몸이 된다. 바다체험은 육지생활을 한 나에겐 생경하지만 다른 이들의 고된 삶을 이해할 너그러움을 배우게 했다. 해마다 남편의 생일엔 그 귀한 미역과 딱 어울리는 감성돔을 수배한다.

겨울이면 해수면의 온도가 뚝 떨어진 리아스식 해안에서 유랑을 즐기던 감성돔은 헬스장 트레이너처럼 몸집이 부풀고 좋은 기름이 끼었다. 마른미역을 따뜻한 물에 불려놓고 일찍 어시장으로 나갔다. 새벽을 여는 어부가 건져 올린 감성돔은 유유히 헤엄을 치고, 겨울철에는 맛볼 수 있는 물메기는 등을 움츠린 채 잠수하고 있다. 잘 풀어진 미역과 감성돔을 고이 넣은 미역국은 어느새 뽀얀 국물에 감칠맛이 제대로다. 전해 내려오는 시어머니의 비법이 없더라도 누구나 근사한 요리사가 되는 재료다. 남해가 다했다 라는 정석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돈 많이 벌어오라고 최고단위의 종이돈도 놓고, 갓 지은 찰밥은 고봉으로, 제일 차리기 쉬운 과일은 색색깔로, 사람들 사이에서 잘 어우러지길 바라며 오색나물도 차린다. 제대로 끓인 생선미역국 하나면 특별한 날의 환희와 환대를 느끼고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다.

사실 남편이 좋아하는 겨울메뉴는 따로 있다. 바로 물메기국. 귀 빠진 날에 이왕이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 선물이겠다 싶어 어느 해 생일에는 물메기국을 끓였다. 온몸을 물로 감싼 물메기를 사다가 삐져 쓴 겨울무를 끓여내고 숭숭 썬 대파와 다진 마늘로 마무리를 했더니 악처 노릇한 과거사가 없던 일이 되었다. 남편의 만족함에 메기통발배가 만선을 이루고, 해안가 마을엔 메기덕장이 풍어일 때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던 어느 행복한 어부의 웃음이 생각났다.

삼십여년전에 애인과의 데이트길에 친정엄마가 마른메기 구운 것을 싸주었다는 지인의 이야기에 허리를 꺾으며 웃던 생각도 났다. 메기의 추억과 생일날의 축하라니. 겨울을 녹이는 봄처럼 포근하고 행복한 그믐날 생일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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