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50)2009년 마칼루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50)2009년 마칼루
  • 경남일보
  • 승인 2020.12.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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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만에 재도전, 정상에 서다

울산연맹 1990년 울산 최초 8000m 도전 실패
이상호·김영태 당시 참여 대원…영광 재현 나서
 
2009년 마칼루 정상에 선 강연룡이 아슬아슬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울산산악연맹은 2009년 마칼루 등반을 준비했다. 이상호 대장이 울산지역 산악인을 중심으로 ‘에코폴리스 울산2009 마칼루 원정대’를 구성했다.

이상호 대장과 김영태 대원은 19년 전인 1990년 울산 최초 8000m 등반에 나섰다. 당시 도전한 산이 바로 마칼루였다. 원정대는 네팔 카트만두에서 화물이 예정보다 20일 이상 늦게 도착하는 불운이 겹쳤다. 7200m에 4캠프에서 등반에 나섰지만 셰르파가 쓰러지는 등 우여곡절 끝에 등정에 실패했다.

두 번 다시 실패 없다

19년이 지난 2009년 이상호 대장은 울산과 경남 산악인들로 구성된 원정대를 결성했다. 조창배 부대장을 비롯해 김영태 등반대장·윤치원·이동대·정수열·한영준·강연룡·이정훈·박상우·문철환 대원이 참여했다. 또 8000m 14좌 완등을 목표로 활발한 활동하던 코오롱팀 김재수 대장과 고미영 대원이 합류했다. 원정대는 3월 19일부터 5월 17일까지 60일간이며 등반루트는 마칼루 라~북서릉을 선택했다.

이상호 대장은 2007년 김재수 대장이 주도한 ‘2007 에베레스트 김해 플라잉 점프원정대’에 참가해 등정에 성공했다. 김영태 대원은 199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한국 초등을 한 관록을 갖고 있었다.

3월 19일 원정대는 카트만두에 도착해 행정 절차와 식량·장비를 구입했다. 3월 22일 비행기로 툼링타르에 가뿐히 내려앉았다. 3월 24일 카트만두에서 보낸 짐들이 도착하자 짐을 재포장하고 카라반을 준비했다.

3월 25일 도보 카라반에 나선 원정대는 9일 만인 4월 3일 탕마르 베이스캠프(4800m)에 무사히 도착했다. 마칼루 베이스캠프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다음날 포터들은 하이 베이스캠프로 출발했다. 대원들은 고소 적응을 위해 5300m 지점까지 진출해 마칼루 북서릉을 볼 수 있었다.

4월 6일 원정대는 카라반을 시작한 지 13일 만에 마칼루 베이스캠프(5600m)에 도착했다. 돌을 치우고 바닥을 고른 후 13동의 텐트를 설치하는 데 3일이 걸렸다.

 
베이스캠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대원들과 현지인들.
많은 크레바스로 1캠프 건설 지연

4월 11일 라마제를 지낸 후 대원들은 1캠프(6500m) 구축에 나섰다. 그러나 1캠프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전진캠프(5900m)를 설치하기로 했다. 전진캠프로 가는 구간은 곳곳의 빙탑들은 언제 무너질지 몰라 긴장했고, 전진 속도를 더디게 했다. 또 생각보다 많은 로프가 필요했다. 낙석지대를 어렵게 지나고 난 후 경사가 심한 너덜지대를 통과했다. 너덜지대가 끝나는 능선에 텐트를 설치하고 하산했다. 다음날 일찍 셰르파들과 함께 1캠프 구축에 나섰지만 많은 크레바스로 인해 로프를 깔며 전진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결국 식량과 장비를 저장한 후 BC로 하산했다.

1캠프를 구축한 것은 4월 14일이었다. 대원들은 고소적응을 마친 후 하산하고, 강연룡·이동대 대원, 그리고 셰르파 2명이 첫날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대원들은 루트를 만들고 셰르파들은 짐을 수송했다.

강연룡 대원이 선두에 섰다. 그러나 2캠프로 가는 길은 경사가 심했고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암벽 구간이 많아 하켄도 많이 필요했다. 700m를 진출한 후 1캠프로 하산했다. 뒤에 올라온 정수열·윤치원 대원이 루트 개척에 나섰다. 4월 18일 마칼루 라(7300m)까지 길이 열렸다.

길 뚫리자 몰려든 염치 없는 외국 원정대

4월 19일 이상호 대장과 강연룡 대원 등은 2캠프로 짐 수송에 나섰다. BC에서는 마칼루 라까지 안전한 루트가 확보됐다는 소식에 외국 원정대가 1캠프로 향했다. 호주합동대는 셰르파를 시켜 한국 원정대가 설치한 로프를 사용해도 되겠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이상호 대장은 말했다. “로프가 튼튼하지 않아 많은 대원들이 사용할 경우 끊어질 위험이 있다”며 거절했다. 외국 원정대는 한국 캠프를 찾아 항의했다. 사실 외국 원정대는 총 600m 정도의 로프만 갖고 이번 등반에 나섰다. 사실상 한국팀 로프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정상에 가기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상호 대장은 외국팀들이 가져온 로프는 보수용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허락했다.

2캠프로 가는 길은 300m의 설벽과 400m의 암벽을 오른 후 두 번째로 200m 설벽과 400m 암벽을 넘어 마칼루 라까지 꼬박 8시간이 걸렸다. 이곳에서 3캠프(7600m)까지는 200m를 남겨두고 있었다. 마칼루 라에 짐을 잘 보관하고 대원들은 오후 7시 30분 BC로 하산했다.

 
정상으로 향하고 있는 대원
김영태 등반대장 위 경련…19년 전 실패 재연

4월 22일 휴식을 취한 원정대는 4월 25일 정상 공격을 시작하기로 했다. 한편 김영태 등반대장은 위가 좋지 않았고 문철환 대원은 치통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김영태 등반대장은 19년 전 이상호 대장과 함께 눈물의 후퇴를 했는데 또다시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이상호 대장은 하산하는 김영태 등반대장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호 대장은 당시를 회상했다. “영태와 나는 19년 전 마칼루에서 셰르파들의 컨디션 난조로 실패한 경험이 있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정상으로 가는 길이 열렸는데 등반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영태 아우의 마음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그날부터 강한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원정대는 위성전화로 날씨를 확인한 결과 4월 28일~5월 1일 날씨가 좋다는 정보를 받고 D-day를 5월 1일로 정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셰르파를 이끌던 사다가 잦은 기침으로 목이 좋지 않다며 하산하는 일이 발생했다. 원정대는 회의를 열고 8명의 대원과 3명의 셰르파가 한꺼번에 움직일 경우 텐트를 사용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 하루 간격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경사면을 오르고 있는 대원들.
이상호 대장…좁은 텐트 고려 등반 포기

4월 28일 대원들은 1캠프로 향했다. 지난 닷새간 불던 바람은 사라졌고, 눈은 내리지 않았다.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1캠프 역시 지난 바람과 폭설에 잘 견뎌냈다. 왠지 정상에 순조롭게 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대원들은 2캠프로 힘차게 나아갔다.

갑자기 이상호 대장이 강연룡 대원에게 무전을 보냈다. “1캠프로 하산하겠다. 최선을 다해 정상에 서기 바란다.”

강연룡 대원은 생각했다. “왜 갑자기 하산하는 걸까? 19년 전 실패한 산이었기에 더 오르고 싶었을 텐데…. 2년 전 에베레스트 정상도 올랐고 체력도 문제없는데. 아니면 대원과 셰르파가 텐트를 사용할 수 없어 자신을 희생하는 걸까?”

강연룡은 많은 대원이 정상에 설 수 있도록 희생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아쉬움을 달래며 전진했다.

오후 5시 제일 먼저 도착한 강연룡 대원은 이상호 대장과 무전으로 대원들의 등반이 너무 늦어 걱정했다. 뒤따라 올라온 윤치원 대원이 500m 아래에 있는 대원들에게 내려가 시간이 부족해 1캠프로 내려갈 것을 권유했다. 결국 대원들은 1캠프로 하산하고 윤치원은 늦은 밤 2캠프로 올라왔다.

 
정상 바로 앞 피너클을 넘고 있는 대원들

5월 1일 정상에 서다

4월 30일 3캠프(7600m)까지 어렵지 않게 도착했다. 정상(8463m)까지는 꽤 멀어 보였다. 이른 저녁을 먹고 3시간 잠을 잔 뒤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밤 11시 30분 가늘고 밝은 랜턴 불빛에 의지하고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빙탑지대를 지나며 어렵게 크레바스 구간을 돌파했지만 정상으로 가는 길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프렌치 쿨르와르에 도착하기 전 여명이 찾아왔다. 로프도 동이 났다. 대원들은 이제부터 자신의 안전은 직접 책임져야 했다. 프렌치 쿨르와르~정상 능선은 너덜지대를 지났다. 오전 9시 30분 시야가 탁 트였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피너클(암벽 돌출부)을 넘어서자 마칼루 정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정상으로 이어진 구간은 잘 결빙된 얼음이어서 매우 위험했다. 조심스럽게 능선을 올라선 강연룡은 3캠프를 떠난 지 11시간 만인 2009년 5월 1일 오전 10시 20분 정상에 섰다. 이어 김재수 대장과 고미영·윤치원 대원이 올라왔다.

정상에 선 강연룡은 회상했다.

“모든 대원들과 함께 정상을 밟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과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늘 그렇지만 정상엔 아무것도 없다. 그 어떠한 희열도, 감격도 느끼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BC로 하산해서 여유 있는 마음으로 소주잔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 바람뿐….”

박명환 경남산악연맹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카라반 도중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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