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외주화를 멈춰달라
죽음의 외주화를 멈춰달라
  • 경남일보
  • 승인 2020.12.1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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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경상대신문사 편집국장)
재작년 겨울, 수능을 치르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에 동성로 한일극장 앞에서 있었던 어느 추모제를 기억한다. 충남 태안의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새벽 근무를 하다 사고로 숨진 고(故)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었다. 분향소가 차려진 천막 안에 들어가 기꺼이 동행해준 친구와 함께 향불을 피우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지난 12월 10일은 어느덧 고(故) 김용균 씨의 사고 2주기였다. 고등학생이던 내가 대학 3년을 바라보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흘렀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 2018년 12월 27일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법률안’(산안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28년 만의 산안법 전면 개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처벌 하한선이 없는 규정으로 사망 산재가 벌어져도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정 산안법에는 용균 씨가 일하던 발전소를 비롯해 지하철, 철도, 조선업 등이 위험 업무에 대한 도급 금지 대상에서 빠졌다. 원청 기업이 노동자를 상대로 책임져야 할 안전 및 보건 조치의 내용과 범위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정의당은 산재 발생 시 사용자와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 산업 현장의 안전대책을 마련하자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안 제정을 주장해오고 있다. 그러나 거대정당이 의지를 보이지 않아, 최근에는 민주당이 절차 문제 등의 이유를 들어 정기국회 내 처리가 불발되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그의 저서 ‘위험사회론’에서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회는 위험이 중심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위험사회’라는 개념을 정의했다. 그리고 위험사회를 극복하는 수단 중 하나로 ‘소통’을 제시했다. 시민들은 위험에 대해 인식, 직시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메시지를 빌려 각 정당은 당 내부에서 의견을 절충하고, 또 당 밖에서 재계, 노동계와 하루빨리 합의점을 찾아 중대재해법을 연내 제정하여 노동자들의 권익과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제 한 몸 불살라 한국사회의 참혹한 노동 현실을 고발한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맞는 올해가 벌써 저물어간다. 차마 셀 수 없는 노동자의 희생과 외침이 더는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예진 경상대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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