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가치
존재의 가치
  • 경남일보
  • 승인 2020.12.1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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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영 (시조시인·청명법률사무소)
 
 

 

옛날 어느 절을 지을 때 산에서 캐온 화강암으로 불상과 계단을 만들었다. 어느날 돌계단이 불상에게 물었다. “우리는 같은 산의 같은 바위 출신인데 어째서 사람들은 나를 밟고 가서 너를 숭배하지?” 불상이 대답했다. “너는 네 군데 모서리만 베어졌지만 나는 수없이 깎이고 다듬어졌거든.”

피나는 노력과 뼈를 깎는 인내의 결과 자신의 가치를 높이게 된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속담이나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와도 직결된다. 그렇다면 돌계단은 태만하고 인내하지 못해 낙오된 존재로서 그만큼 자신의 가치가 낮아진 것일까? 그래서 돌계단은 부끄러워해야 할까? 다음 이야기를 보자.

젊은 스님이 어느 소녀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스승이 물었다. “소녀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젊은 스님이 대답했다. “오백 년 동안 비바람을 견디고, 오백년 동안 눈보라를 견디고, 오백 년 동안 땡볕을 견디며, 소녀가 돌다리를 건널 수만 있다면 그 돌다리가 되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위의 돌계단이 듣는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사람들은 불상을 숭배하러 갈 때 나를 밟고 간다. 나는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땡볕과 비바람과 눈보라를 묵묵히 견디면서 사람들이 불상에게 절을 할 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오래 밟히겠다. 그것이 나의 가치다.

장자의 무용지용을 말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소용없는 것은 없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도 없다. 물론, 어쩌면 사람이기 때문에 있어선 안 될 사람도 있다는 주장 또한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위 이야기들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맥락이 다르다. 노력과 능력의 결과에 따라 자리는 다를지언정 자리의 가치를 차등적으로 매길 수는 없다는 뜻이다.

연암의 소설 ‘예덕선생전’은 좋은 사례가 된다. 학문 높은 선귤자는 분뇨 수거가 직업인 엄행수를 벗으로 사귀며 예덕선생으로 높여 부른다. 이를 부끄럽게 여겨 문하를 떠나려는 제자 자목에게 선귤자는 ‘비록 직업과 신분이 비천하지만 안분지족하고 근검절약하는 엄행수의 검소한 생활태도와 자기 일에 충실한 인품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며 당시 양반들의 허위의식과 위선을 비판한다.

자목으로 대표되는 신분적 차별의식을 가진 이들은 요즘 세상에도 많은 듯하다.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소중한 가치로 상호작용하며 사는 세상에서, 직업으로 가치를 매기며 갑질도 서슴지 않는 어리석은 이들은 위 석불이 출세의 상징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 엄행수 같은 사람이 없으면 세상이 똥 천하가 되리라는 것도.

김성영/시조시인·청명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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