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35)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35)
  • 경남일보
  • 승인 2020.12.17 1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85) 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7)
지난주는 김성진의 수필 <귀천>을 읽었다. 천상병의 <귀천>이 아니라 김성진의 자작시 <어떤 소풍>을 놓고 풀어가는 수필이었다. 화자가 차를 몰고 가는데 그 앞에는 돼지들을 태워 가는 차량이 보였다. 지나간 원고라 독자들을 위해 예를 든 <귀천> 후반부를 다시 인용한다.

“4번 명찰을 단 한 놈이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덜컹거리는 요동이 재미 있는지/ 히쭉 히쭉 웃고 있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그들과 헤어진 후/ 제일 크게 웃던 그놈을 다시 만난 건/ 산악회 창립기념일이었다.// 깨끗이 면도한 그놈은 제상 위에 앉아/ 흰 봉투 입에 물고 히쭉이 웃고 있다/ 우리는 일제히 큰 절을 올렸다// 소풍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어떤 소풍>

김성진의 <어떤 소풍>은 팔려가는 돼지들이 죽으러 가는 즐도 모르고 소풍 가는 양 들떠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그중 화자외 눈을 맞추었던 4번 명찰을 단 돼지가 산악회 창립기념일에 올리는 제상에 돼지머리로 오른 것이었다. 그래 절을 하면서 “소풍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한 것이다. 아니러니이기도 하고 해학이기도 하다. 시에서 표명은 하지 않았지만 시의 내면에서는 인간들의 비정함이 담겨 있다.

수필을 따라가 보자. “천상병 시인은 <귀천>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이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인생을 절묘하게 소풍으로 표현했다. 곱씹어 보면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이 세상에 태어나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삶의 고통 속에 지금의 행복이 행복인 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다. 죽으면 결국 한 줌 유기물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 자연으로 돌아간다. 한 줌 흙이 되고 잡초의 거름이 되고, 소가 잡초를 먹고 인간이 소를 먹는다. 자연의 대순환이다.”

“내가 당장 죽는다고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 저기 산천초목은 전과 같이 푸르고 멀리 저 산도 전과 같이 우뚝 솟아 있을 것이고, 하늘엔 여전히 태양도 달도 별도 뜰 것이다.”

이 끝대목에서 김성진의 수필은 불가의 윤회를 넌지시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끊임 없이 변한 인간의 마음처럼 세상은 변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게 자연이다” 라고 해놓아 지금부터 죽음의 문제는 본격적으로 화자 앞에 다가선다는 것을 줄이고 있어 보인다.

김성진의 <어떤 소풍>은 천상병의 <귀천>을 부분적으로 패러디한 시다. 수필의 제목이 같고 돼지들이 이름표를 달고 어린이처럼 소풍 가는 듯함을 보여주었고 그 소풍은 천상병의 <귀천>의 키워드임을 상기할 때 그렇다. 천상병은 살아서 직업을 가지는 것을 시정신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사람이 직업이 없을 때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한 실험적인 인생을 살았는데 그는 신을 믿었고 자기를 헌신적으로 돌봐준 아내 목순옥여사가 개신교 신자라 아내 따라 다니며 예배를 드렸지만 개종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성적으로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어린이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그는 시에서 어린이와 ‘새’를 다수 표현했다. 인생이 자유라는 것일 듯 싶다. 그럴 때 도달하는 곳이 어린이가 노니는 놀이터였을 것이다. 거기가 소풍 장소가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천상병 시인은 지리산 중산리에 한국시사랑문인협회가 세운 <귀천 시비>로 들어와 지리산 가족이 되었다. 하늘에 가까운 지리산 천왕봉을 직선으로 비스듬히 올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시비가 세워져 어찌 천상병이 지리산인가 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 “나는 소풍을 끝내고 천왕봉 1915m를 가벼히 밟고 하늘로 간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김성진 시인의 개성적이고 삶의 존재에 대한 탐색의 수필을 읽으며 모두 한 번쯤 <귀천>시와 김성진의 <어떤 소풍>을 읽어보기 권한다. 필자는 천상병 시비가 중산리에 세워지고 난 뒤 <귀천 시비>라는 시를 썼다. “귀천 시비 서고 난 뒤/ 천왕봉이 시를 읽기 시작했다”라고 썼는데 서울애서 중산리에 오른 문정희 시인이 이 시를 읽고는 산이 시를 읽는다는 구절에서 지리산의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낀다고 했다. 김성진의 <어떤 소풍>, 천상병의 <귀천>, 강희근의 <귀천 시비>를 한 번씩 찾아서 시 맛보기를 해보았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