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 길로 대숲을 보호하는 정도전
우회 길로 대숲을 보호하는 정도전
  • 경남일보
  • 승인 2020.12.2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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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지금은 촉석루에 올라도 남강 건너편에 대나무 숲이 조금 밖에 없다. 남강변이 백사장과 대나무 숲으로 어우러졌던 백사청죽(白沙靑竹)의 시대에 진주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대숲을 보고 감탄하였다.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쓴 위암 장지연은 1909년 진주에서 창간된 최초의 지방지 경남일보에 주필로 초빙되었다. 1910년 위암은 진주의 뛰어난 세 가지 자랑거리로 풍부한 물산, 아름다운 기녀와 함께 무성한 대숲을 꼽았다. 그러나 110년이 흐르는 동안 도로확장공사, 남강하천정비사업 등의 개발 열풍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대숲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마다 안타까워하는 이들은 봉황을 머물게 하기 위해서 대숲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향토사학자들은 남강의 대숲이야말로 진주성, 남강과 함께 어우러져 진주 천년을 증언하는 역사라고 말하였다. 나는 이 역사를 지키는 지혜를 정도전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이 한창 핍박을 받을 때인 고려말 우왕 때 벼슬을 떠나 단양으로 내려와 있으면서 ‘산중(山中) 2’를 썼다.

‘하찮은 집이 삼봉 아래에 있으니(弊業三峯下)

송계로 돌아와 가을을 즐기네.(歸來松桂秋)

집이 가난하여 병을 고치기는 힘들어도(家貧妨養疾)

마음이 고요하니 근심을 잊기에 족하네.(心靜足忘憂)

대나무숲을 아껴 멀리 둘러 길을 내고(護竹開迂逕)

산을 사랑하여 누를 작게 지었네.(憐山起小樓)’

시의 첫 줄에 등장하는 삼봉은 단양군에 있다. 그의 외가가 있는 충청북도 단양군의 도담삼봉(嶋潭三峰)이다. 바로 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단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천하명승 단양팔경(丹陽八景)이고, 그 중에서도 으뜸은 도담삼봉이다. 도담삼봉은 소백산 자락을 휘감아 돌던 남한강이 매포읍 도담리에 이르러 강 한가운데 만들어 놓은 아담한 세 개의 봉우리를 가리킨다.

삼봉은 한양 천도를 총지휘할 만큼 도시계획, 토목에 밝은 인물이다. 수도 한양의 도성을 직접 설계했다. 심지어 4대문과 4소문의 이름, 5부와 49개의 방과 경복궁의 전각 이름도 그가 지었다. 4대문은 1396년 도성을 축조할 때 정남에 세운 숭례문, 정북에 세운 숙정문, 정동에 세운 홍인문, 정서에 세운 돈의문을 말한다. 가장 중요한 궁궐의 이름은 시경에 나오는 ‘군자만년개이경보(君子萬年介爾景福)’에서 따 경복궁이라고 했다. 사대문의 이름도 지배이데올로그인 유교의 ‘인의예지’의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삼봉은 막무가내 토건주의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단양 도담삼봉의 아름다운 경치가 좋아서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할 정도였다. 자연과 함께 하고자 한 삼봉은 자신의 집을 지으면서 그냥 없애면 간단할텐데 굳이 대숲을 보호하려고 길을 둘러 내었고, 산의 경관을 항상 제대로 보기 위하여 누각을 조그맣게 지었다. 말하자면 조망권 확보를 위해 도로설계와 고도제한을 하였던 것이다. 유배에서 풀려나 개경으로 온 1385년에는 ‘대나무 처소(竹所)’라는 시를 썼다.

지난해 진주시에서는 대나무숲 정비와 산책로 주변 관람석을 설치하기 위해 대숲을 축소할 계획을 하였다. 그러나 진주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의 반대와 봉황을 그리워하는 지역 여론에 따라 대나무숲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법면(法面) 유실 우려로 인한 대나무숲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사업변경을 하였다. 진주에 지금도 대나무를 아끼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다.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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