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초와 sea월드
보물초와 sea월드
  • 경남일보
  • 승인 2020.12.2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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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한때 결혼한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유머, 며느리들이 제일 싫어하는 음식은? 시금치, 시래기국. 이유는? 시월드가 싫어 ‘시’자가 들어간 음식조차도 싫다네. 시금치가 싫다는 건 유행 지난 유머에서나 나온다. 내가 사는 보물섬 남해의 겨울철 효자종목으로는 시금치가 으뜸이다. 그 우수성을 알리고자 이름도 지었으니 바로 ‘보물초’다. 척박한 땅심을 이겨내고, 거센 해풍을 맞고, 적당한 햇살의 어루만짐, 매일 찬물샤워를 하고, 농부의 사랑이 만들어 낸 한겨울 걸작이다. 서리를 맞고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 보물초는 달디 단 설탕이 된다. 끓는 물에 살근 데쳐 내어 액젓만 넣고 무쳐도 맛있고, 익힌 주꾸미나 낙지를 넣고 데쳐낸 시금치와 초고추장으로 버무리면 근사한 요리가 된다.

올해는 시금치값이 하락해 농민들의 가슴이 아리지만, 보물초가 남해 소식을 품고 도시사람들의 식탁에 올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은 내 일처럼 반갑다. 도시민들의 귀촌, 창작가들의 남해 체류, 남해를 지킨 터줏대감들이 시금치빵, 시금치감바스를 만들어 재미를 보고, 시금치페스토를 개발해 소스로 활용한다. 시금치에 함유된 영양소가 면역력 증강 및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어 남해마늘연구소에서는 시금치크리스피롤을 출시해 남녀노소 누구나에게 취향저격인 간식이 되고 있다. 시금치를 먹는 순간 괴력을 발휘하는 뽀빠이처럼 활기가 넘치고 긍정에너지가 넘치는 남해다.

남해사람들의 부지런함은 세상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럽다. 황금물결이던 들판에 추수가 끝나면 곧, 마늘을 심거나 시금치 종자를 뿌린다. 농한기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다. 제철에 맞는 작물을 연속적으로 재배하거나 다음 농사를 준비하거나 미루어 두었던 병원진료를 가거나, 시골에 살면 실제 농한기를 느끼기 힘들다.

새내기 직장동료는 출장길에서 한겨울에도 초록 풋풋한 마늘과 시금치, 푸른 바다 등 푸르른 남해에 반했노라 고백한다. 나는 내가 시금치라도 된 냥 어깨를 으쓱였다. 추수를 마친 남해의 들판에는 하얀 곤포사일리지가 쌓여 있고, 해안가를 따라가면 황토 계단식 밭에는 시금치가 빼곡히 자라고 있다. 마시멜로로 착각하기 쉬운 하얀 점들이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바닷바람을 막으려 하얀 부직포로 만든 옷을 입고 쪼그리고 앉아 시금치 캐는 촌로들이다. 시금치와 함께 겨우살이 하는 농부들은 그 푸름을 닮아 늘 청춘이다. 보물초와 남해바다, 며느리들도 좋아하는 sea월드다.

김연경/남해군청 문화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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