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던 때, 아파트를 장만한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고 가면 여간 부럽지 않았다. 새집의 주인이 된 친구는 어쩐지 당당해 보였고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던 나는 주눅이 들곤 했었다. 그러나 이런 부러움도 하나 둘 올라오는 흰머리를 새치머리라 우기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고보면, 철없던 시절의 추억 같은 옛 일이다. 주름진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누구보다 가까웠던 친구. 수 십 년이 흐른 세월의 끈을 잡아당겨본다. 달려오는 시간의 끈에는 같이 있어 웃을 수 있었던 행복했던 순간과, 두고두고 서운했던 일들이 교집합으로 남았다. 어느 순간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지 못한 채 버려두고는 친구와 나는 덧나지 않을 만큼의 따끔거림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얼마만의 만남인가.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시선은 허공에서 베란다로 향한다.
마주하지 않고 보낸 시간만큼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베란다에 머물고 있는 내 눈길을 의식했는지 친구는 뜬금없이 베란다 확장 이야기를 꺼낸다. 베란다를 확장해서 집을 넓게 쓸 것인가 아니면 그냥 둘 것인가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터인가 아파트의 베란다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요즘은 아예 확장이 된 채로 분양을 하다 보니 더욱 그럴 것이다. 베란다는 한 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한번 걸러 주고, 추울 때는 바깥의 차가운 공기를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대부분은 베란다를 없애고 넓게 쓰고 싶어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베란다와 같은 ‘사이’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베란다가 안과 바깥을 완화시켜주듯, 베란다의 ‘사이’는 네 생각과 내 생각을 버무려 이해와 공존을 가능케 해주는 고마운 곳이다. 친구와 나와의 관계에도 ‘사이’라는 공간이 존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위로 커피의 수증기가 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고혜량/동랑청마기념사업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