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서 배운다
엄마에게서 배운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12.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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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량 (동랑청마기념사업회 이사)
 

어설픈 솜씨의 까치 호랑이 그림을 현관에 걸어놓았다. 어디에 있던 무슨 상관있냐만 현관을 통해 나가고 들어오는 모든 소식들이 2021년 새해에는 기쁜 소식만 들려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내친김에 새해맞이 대청소를 한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가 풀썩거리며 일어나 게으름을 부린 나를 향해 날아든다. 청소할 생각만으로 피로감이 몰려온다. 문득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남새밭의 풀을 매다 ‘이기 뭐꼬, 호랑이가 새끼 낳으러 오겠다’던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엄마에게는 하나의 철칙이 있었다. 마루와 장독대, 그리고 부엌은 언제나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마루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레질을 하셨다. 손님이 온다고 느닷없이 걸레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나 누구라도 와서 마루에 앉더라도 티 하나 묻지 않게 닦고 또 닦았다. 마치 실과 바늘 같이 잠시 마루에 걸터앉을 때도 손에서 걸레를 놓는 법이 없었다.

마당 한편 장독대의 크고 작은 항아리도 늘 정갈했다. 집안 어느 곳이든 나의 놀이터가 되었건만 장독대 안에서 만큼은 내 장난이 허락되지 않았다. 장독대에 들어설 때마다 엄마의 손에는 행주가 들려있었다. 항아리가 숨을 쉬 듯 엄마는 단지를 닦으며 여인네의 고단한 삶을 깊은 한 숨으로 내려놓았는지 모른다. 비질을 할 때마다 풀풀 날리는 흙먼지가 마루나 장독대의 항아리마다 앉았을 테지만 신기하게도 그곳에 먼지가 앉은 것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시도 몸을 쉴 여유가 없었던 시간이었음에도 어쩜 그리도 깔끔하게 집안을 건사했을까?

온전한 엄마의 공간이었던 부엌. 남들이 보는 것도 아니고, 남자들이 드나드는 공간도 아니었지만 부엌 또한 언제나 정갈했다. 특히 가마솥은 정성스럽게 간수하셨다. 동백기름을 발라놓은 듯 새까만 가마솥에서 반들반들 윤이 났다.

비단 엄마뿐만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았던 여인들에게는 마루와 장독 그리고 가마솥이 언제나 깨끗해야 하는 것은 그 어떤 자존심이었는지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지켜야 할 무언의 약속이었으며 생활 그 자체였다.

우리 사회도 당연히 지켜져야 할 그 무엇이 있다. 허물어져서는 안 되는 약속이 있다. 그건 평등, 정의, 공정 같은 것이리라. 이런 가치들은 유독 타인에게는 엄중하면서도 자신에게는 너그럽기 한이 없다. 그런 탓으로 2020년 보내며 우리 사회의 실태를 교수들은 사자성어 ‘아시타비(我是他非)’로 압축시켜 놓았다. 엄마의 마루, 엄마의 장독, 엄마의 부엌처럼 깨끗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깨끗했으면 좋겠다.

고혜량/동랑청마기념사업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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