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01.0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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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애타게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을 절절하게 느끼게 하는데요. 저항시라고 국어 시간에 배웠지만, 저는 그저 이 시에서 단순히 봄을 기다리는 마음만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 꽃을 보면서 희망을 기대하고 좋은 봄날을 기다리는 마음을 잃지 않고 싶은 마음이죠.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네가 끌었는냐 누가 부르더냐/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 흔들고/종다리는 울타리 넘어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어젯밤 꽃집에 들러 활짝 핀 꽃 모종 화분을 두 개 샀지요. 빈 화분에 심어 연구실에 화사한 봄을 안기고 싶어서였지요. 제가 자주 가는 꽃집이 네 곳인데요. 아침 출근길에 보니 어젯밤 꽃 모종을 산 곳은 문을 열지 않았네요. 이르게 연 꽃집에 들러 미안하지만 다른 곳에서 산 꽃 화분을 빈 화분에 옮겨심어 달라고 했어요. 한창 바쁘게 화환을 만들고 있던 주인이 조금 기다려달라 하더군요. 동생이 오빠에게 준다는 화환은 돈 꽃다발이었습니다. 만 원짜리를 화환처럼 꽃에 얽어 다발을 만들고 있더군요. 참 희한한 풍습이죠. 좋게 생각하면 돈벼락을 맞거나 돈다발을 선물 받는다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겠죠. 그러나 돈 화환은 생경했지요. 그 돈을 오래 두고 바라보지는 않을 겁니다. 돈 꽃다발을 받아 돈을 세며 챙기겠지요. 남은 몇 송이 꽃이 휑뎅한 화환을 장식하겠지만요. 마음이야 아름다운 거지만, 꽃과는 댈 수 없는 돈다발이었습니다.

화분에 심긴 꽃을 히말라야에서 가져온 야크 가죽가방에 담았습니다. 꽃집 주인이 가방이 멋지다며, 꽃 화분을 담은 가방을 사진 찍더군요. 가방에 담긴 꽃 화분이 멋져 보였던 겁니다. 저도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좋더군요. 어디에 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이런 장면도 아름다움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에 작은 기쁨을 느낍니다.

봄은 오고야 맙니다. 지금 누구나 코로나19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걸 어찌 이겨낼 것인가가 우리의 의무이며 책임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힘겹지만 이내 코로나19는 이겨나갈 겁니다. 봄은 오고야 말 듯이 말이죠. 견디고 이겨나가겠다는 의지가 투철하다면 그까짓 코로나19가 대수겠습니까. 더 많은 고난도 이겨나간 의지의 한국인 아니었습니까. 그렇기에 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긍정 정신은 희망에 차게 하고, 그 희망으로 새로운 해를 열심히 살 것이라는 다짐도 하며 새해를 맞이할 수 있으니까요. 꽃은 다시 필 것입니다. 고난의 시기에도 꽃은 피었고, 희망을 노래할 테니까요.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빼앗긴 화목도 꽃처럼 필 테니까요.

박재현 (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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