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함께 시키지도 않은 튀밥이 조그만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나온다. 생경스럽긴 하지만 어쩐지 시골카페의 분위기와 살짝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커피 잔을 들자마자 시작된 그녀의 자랑은 좀체 멈추지 않는다. 거짓부렁은 아니겠지만 시샘과 함께 그렇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마저 느껴진다. 한 참 이어지는 자랑에 테이블 위 옥수수 튀밥을 집어먹는다. 그녀는 한 되 가져가면 한 자루가 되어 나오는 뻥튀기 같은 자랑에 여념이 없고, 나는 뻥튀기에 대한 추억여행에 여념이 없다.
가끔씩 마을 골목어귀나 양지바른 돌담아래 뻥튀기 아저씨가 자리를 잡은 날이면 온 동네 아이들은 신이 났다. 그곳에는 곡물이 담긴 양철깡통이 줄줄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뻥튀기 아저씨는 빠른 손놀림으로 사카린을 넣은 곡물을 뻥튀기 틀에 넣고는 불 위에서 돌리다가 됐다 싶으면 불을 빼고, 시커먼 주둥이에 긴 망태를 씌우고 쇠꼬챙이로 주둥이를 비켜 당기면서 “뻥이요!”라고 소리쳤다.
모든 아이들이 숨을 멈춰야할 만큼 긴장의 순간이다. 배가 불룩하여 마치 다리 없는 외계인처럼 생긴 뻥튀기 틀에서 땅을 흔들 만큼 큰 소리가 났다. 하얀 연기가 뽀얗게 퍼져 오르면 눈처럼 흰 튀밥이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온 주변에는 고소한 냄새로 뒤덮였다.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도 뻥튀기 틀 아래 놓인 비닐 깔판으로 우르르 달려가 바닥에 떨어진 튀밥을 주워 먹기 바빴다. 바닥에 떨어진 튀밥을 주워 먹는 것은 뻥튀기 아저씨나 튀밥 주인도 아무도 말 하지 않았다. 그건 언제나 배고픈 동네 아이들의 차지였다.
그리운 것은 추억으로 새겨지는가보다. 얼마 전 시골오일장에서 뻥튀기 장수를 봤다. 참 오랜만에 보는 장면이라 반가웠다. 그러나 전과 다르게 모든 게 자동화 되어 있다. 장작으로 피웠던 불은 이제는 가스불로 바뀌었고, 아저씨가 손으로 돌리던 뻥튀기 틀이 지금은 자동으로 제 혼자 돌아가고 있다. 전에는 폭탄 터지는 듯 한 소리가 났지만 지금은 “뻥이요”소리를 외치지 않아도 될 만큼 “픽~”하는 소리만 날 뿐이니, 귀를 막고 가슴 조마조마할 필요도 없다. 동네 아이들이 주워 먹던 뻥튀기도 지금은 겁 없는 비둘기 몇 마리가 날아와 쪼아 먹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말을 웃으며 들어주자. 없는 것을 부풀려 말하는 허풍이 아니라면 허세 좀 부리면 어때. 밀가루를 이스트로 적당히 부풀리게 해야 맛있는 찐빵이 되듯이, 쌀이 고소한 튀밥이 되듯이 적당히 부풀릴 수 있는 것도 삶의 재미 아니겠는가.
고혜량/동랑청마기념사업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