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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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1.0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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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9)
화자의 낮은음자리 오라버니는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엔 가족보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줄을 이었다. 수많은 친구들이 그가 떠나는 것을 배웅했다. 낮은 자의 아픔을 보듬는 이는 가진 자가 아니고 그들의 아픔을 아는 이들이다. 그가 베푼 많은 시랑을 보고서야 알았다. 세상의 보편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실패한 삶일지도 모르나, 화자는 그가 이름답게 살다가 갔다는 사실에 충분히 공감했다.

해마다 기일이 되면 그가 묵었던 방에 그의 아들과 친구들이 다녀간다.

수필은 이어진다. “세상의 자리표는 우리들의 겉모습이다. 고음으로 소리 치는 자 누군가의 가슴을 찌를 때 진정성 있는 낮은 소리는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져 주고 삶의 깊이를 더한다. 모나게 혹은 부족하게 보이는 사람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소리로 존재한다. 그 소중함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산다. 그들과 함께 내는 소리는 심장 깊숙이 들어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따로 또 같이 우리는 오선지 안에서 공존하여야 한다.”

“창밖은 흐린 날씨에도 무채색이다. 악보를 펴고 첼로를 켠다. 낮은 기압으로 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멀리 퍼진다. 간간이 그의 얼굴이 악보와 오버랩된다. 어느새 국화꽃 한 다발을 들고 나의 소리는 그에게로 가고 있다”

종결이 이름답다. 화자가 악기를 바이올린에서 첼로로 바꾸어 연주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앞부분이고 그 낮은음자리 자리표로 살아오다 죽은 화자의 오라버니 이야기가 뒷부분이다. 그 낮은음자리표로 사는 삶이 진실하고 가치로왔다는 이야기가 체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끌고 나간 것이 눈여겨 볼 대목이었다. 수필에 두 악기를 비유로 삼고 삶의 체현적 자리를 화자의 오라버니로 설정한 점이 작품을 한 단계 높여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끌고 가는 문장의 단단함과 긴장감 제고는 잘 씌어진 소설 같았다. 말하자면 우광미의 수필에는 시적인 비유, 소설적인 구상, 좋은 에쎄이가 갖는 성찰을 포함하는 가작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우광미의 ‘자리표’가 그리스 신화적 요소가 드러나고 있어 그 품격을 다시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필자가 터키 그리스 여행 중 터키의 고대 아시아 7대교회 지역을 지나갈 때 가이드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팍토루스강이 흐르는데 그곳이 ‘당나귀의 귀’로 유명한 왕이 목욕한 곳입니다.” 필자는 그 왕이 마이다스왕임을 금방 알아차렸었다. ‘마이다스 귀’는 신라 경문왕의 귀와 동일형이라 교양과목 가르칠 때 많이 인용했던 대목이었다.

마이다스는 기원전 8세기 경 프리기아의 왕이었는데 디오니소스의 스승을 잘 모신 덕으로 디오니소스의 선물을 받게 되었다. 디오니소스가 마이다스에게 무슨 선물을 받고 싶으냐 물었을 때 마이다스는 “제 손이 닿는 것이 다 황금이 되길 바랍니다.”고 답하자 그대로 되었다. 마이다스는 처음엔 무슨 이런 행운이 있을까 환호했지만 점점 자기의 금 제조능력이 스스로를 죽이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지를 잡으면 가지가 금가지, 밥그릇을 터치하면 그것이 금밥그릇, 빵 조각을 들고 먹으려 하는데 빵이 금으로 바뀌었다. 자기는 이러다 죽음에 이르는 길에 서 있음을 알고 디오니소스를 찾아가 제게서 금 제조 능력을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디오니소스는 마이다스에게 저 흐르는 헥토루스강 상류에 가서 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 자기 죄업을 씻으라고 일렀다. 자유를 얻은 마이다스왕은 이로부터 인생관이 바뀌었다. 그러던 중 음악의 신 아폴론과 숲의 신 판이 음악 컨테스트를 하게 되었고 심판을 했던 마이다스는 화려한 연주(리라)를 한 아폴론에게 손을 들어주지 않고 소박한 진실의 소리를 낸 피리부는 판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그때 화가 난 아폴론은 마이다스의 귀를 당나귀 귀로 만들어버렸다. 이 신화가 그리스로마 신화인데도 불구하고 터키의 기원전 신화라는 점에서 터키기행의 기쁜 지점이 되었다. 그러나 패키지 여행에서 행사장 추가는 불가한 것이었다. 필자는 마이다스가 목욕한 강에 가서 깨끗이 씻어내었으면 하는 호기심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 신화의 리라와 피리는 우광미의 ‘자리표’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이다. 우리집 손녀 중에서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하는 아이가 있다. 그리고 피아노를 친 아이도 있다. 손녀와 언제 모이면 ‘자리표’ 이야기를 해 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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