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보편화되는 재택근무제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보편화되는 재택근무제
  • 경남일보
  • 승인 2021.01.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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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인 사무실의 효시는 1729년 런던에 세워진 동인도 회사 건물로 알려져 있다. 동인도 회사는 수천 마일 떨어진 동남아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상황정보를 모른 채 의사 결정을 내려야 했기 때문에 많은 양의 문서를 생성하고 관리하다보니 사무실이라는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었다. 현대에 들어 사무실이라는 공간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때는 19세기 중반 무렵이다. 당시에는 공장 한 켠에 자리한 경리실(counting house)이라 불리던 좁은 공간이었다. 이후 사무직 관리자들이 늘어나면서 사무실은 공장건물이나 인근의 별도 공간으로 있다가 오늘날 서울의 대기업 본사 건물들처럼 오피스 빌딩들이 도심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산업이 고도화 되면서 사무실의 형태나 운영시스템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공장자동화에 이어 사무자동화(OA-Office Automation)가 도입되면서 수작업으로 작성되던 수많은 문서들이 파일박스나 캐비닛 등에 보관 관리되다가 컴퓨터에 파일형태로 저장이 가능해지다 보니 종이문서들이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문서 없는 사무실-Paperless Office’라든가, 문서 저장 공간이 필요치 않다보니 심지어는 ‘사무실이 필요 없는 회사-Officeless Company’와 같은 용어들도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굳이 회사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도 업무를 볼 수 있는 비즈니스들도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1969년에 이미 미국 특허청 소속 과학자 앨런 키론은 워싱턴 포스트 지에 컴퓨터와 새로운 통신 수단이 삶과 노동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글을 쓴 바 있다. 그는 거주지(domestic), 연결, 전자공학이 조합된 근무형태를 ‘도메네틱스(domenetics)’라는 표현으로 사용하였다. 바로 오늘날의 재택근무 또는 원격근무(telecommuting)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재택근무는 사무자동화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사회의 급진전으로 서서히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COVID-19 이전에는 재택근무의 비중이 0.1% 미만으로 추정될 정도로 미미한 편이었다. COVID-19가 창궐하자 정부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면 직장 인원의 1/3 이상 재택근무가 권고되고, 3단계는 의무화 하도록 돼 있다. 직업 알선 사이트들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들어 대략적으로 60% 정도의 사무직 종사자들이 재택근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택근무에 대한 만족도 또한 68%로 높았고, 71% 정도가 계속해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응답한 것으로 밝혀졌다.

스마트폰, 화상회의 솔루션, e-메일, 팩스, PC, 모뎀 등 재택근무를 기반이나 환경은 이미 갖춰졌지만, 재택근무제의 보급 속도는 아주 더뎠다. 호주와 미국의 경우에도 재택근무 비율은 2019년 말에도 20%를 밑돈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재택근무제의 도입 속도가 느린 이유는 인간이 조직을 구성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기술발달에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윗사람들의 사고는 직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일하는 자주성이 결여돼 있어서, 지켜보지 않거나 관리하지 않으면 직원들이 일을 안 할 것이고 성과도 떨어질 것이라는 고루한 의식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재택근무는 아이디어를 놓고 토론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며 재택근무를 혹평했는가 하면, JP모건은 재택근무로 생산성이 떨어졌다고 판단해 전 직원 재택근무 방침을 철회하고 일부 고위직을 복귀하게 한 사례도 있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가 지난 8월 기업 인사 담당자 4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서 재택근무를 운영 중인 기업은 48.8%에 달했으며 ‘감염병 위기 대처 능력 강화’(71.8%)와 ‘근로자 직무만족도 증가’(58.5%)가 주된 긍정적 효과로 나타났다. 어려운 점으로 ‘의사소통 곤란’(62.6%)과 ‘재택근무가 어려운 직무와의 형평성 문제’, ‘성과 관리·평가의 어려움’도 40%대로 나타났으나, COVID-19 종식 후에도 부분적으로라도 재택근무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응답이 51.8%로 나타나 재택근무제가 점점 보편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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