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무역항 제포
우리나라 최초의 무역항 제포
  • 경남일보
  • 승인 2021.01.1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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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창원대학교 명예교수)
 

도로 항만 등을 일컬어 사회간접자본이라고 한다. 이는 경제발전의 척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이고 북이 휴전선으로 단절돼 항만의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더구나 좁은 국토와 빈약한 자원을 가진 우리로서는 대외통상의 확대만이 경제발전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외개방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던 통일신라(장보고 해상무역)와 고려(여·송무역)는 경제적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그렇지 못했다, 더구나 조선 말, 강화도조약(1876)에 의한 개항은 반식민지적 수탈무역으로 경제적 역기능을 가중시켰다.

오늘날 대외개방정책의 전진기지인 진해신항의 역사적 배경으로 삼포(제포·부산포·염포) 개항을 되돌아 보면 이 중 제일 먼저 개항한 제포가 가장 으뜸가는 항구였다. 지금의 진해 신항만이 바로 그곳이다. 1991년 ‘진해시사’ 를 발간 할 때만해도 그곳이 세계적인 신항(진해신항)이 될 줄은 몰랐다.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무역항 제포’(산업경제/무역편)를 수록한 후 진해시장(김충규)에게 기념비를 세울 것을 요청했으나 간판만 세웠다. 간판은 10년이 지난 뒤에 넘어지고 없어져버렸다. 그때 볼펜으로 간판의 문장만은 남기고 싶어 기록해 놓았다. 이 지면을 통해 전하고 싶다.

‘이곳 웅천1동 제덕(괴정마을, 바깥지게)은 조선 태종 7년(1407)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부산포와 함께 무역항으로 개항되고, 왜관(倭館)이 설치됐던 내이포(제포)로서, 이후 개항된 염포(울산)와 함께 삼포 개항지(開港地)로 조(朝)왜(倭)간 무역의 중심지였다.’

당시 제포는 삼포 중 으뜸가는 포구로 왜인들의 내왕이 가장 빈번했고, 그 중 왜인이 가장 많았던(2500여명) 포구였으며, 왜국의 사신들이 서울로 가는 행로로서의 선착 항구로 이용하였던 곳이다.

또한 이곳 제포는 군사 요충지로서도 중요시 되었는데 위치적으로는 웅천현 내에 속해 있었지만 종삼품(從三品)인 수군(水軍) 첨절제사(僉節制使)가 주둔하였던(제덕마을, 안지게) 우리 수군의 진영이 있었던 곳이며, 제포첨사는 경상(慶尙) 우도(右道) 수군 만호(萬戶)를 관할하였다.

이 충무공의 임진왜란 승첩지로 유명한 웅포 해전지와 안골포 해전지가 바로 이곳 동쪽에 접해있다. 지금은 이곳이 신항만 건설로 매립돼 지형이 변했지만 앞으로 기념비 건립과 수신사, 통신사의 행렬 및 통상행열의 재현 등 다양한 문화 축제가 진해군항제와 함께 개최되기를 바란다.

강용수/창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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