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루와 인동굴
머루와 인동굴
  • 경남일보
  • 승인 2021.01.1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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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량 (동량청마기념사업회이사)
 

‘머루와인동굴’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이 안내간판을 보고나서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머루와 인동굴’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머루’는 알겠는데 ‘인동굴’은 또 뭔가? 하도 궁금해서 “인동굴이 뭐예요?”하고 물었더니 차에 있던 일행들이 갑자기 큰소리로 웃었다. 누구는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어댄다. ‘머루와인 동굴’을 ‘머루와 인동굴’로 읽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비록 내 말 한마디에 한바탕 웃긴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써놓은 것이 문제였는데 마치 내가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된 게 억울하다. ‘~와’ 또는 ‘~과’가 들어가면 대개 습관적으로 앞뒤 낱말을 이어주는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읽게 되는 오류가 빚어낸 해프닝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문맹률이 아주 낮은 나라에 속한다. 그만큼 글을 모르는 사람이 적다는 뜻이다. 그런데 글을 알면 뭐하랴. 글을 읽기는 하는데 그 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글자를 모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이를 일컬어 ‘新문맹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글자는 아는데 그리고 책은 분명 읽고 있으면서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난독증(難讀症)현상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특히 10대가 더 심하다. 그러니 아예 책읽기를 포기한다. 그런데도 희한한 것은 짧은 문장은 귀신같이 안다. 그들의 외계어는 오히려 나이든 우리를 난독증으로 몰고 간다.

‘재접하다’는 인터넷에 다시 접속한다는 뜻이고, ‘야르’는 10대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 쓰는 감탄사라고 한다. ‘무지개매너’는 좋은 뜻처럼 보이지만 ‘무지+개매너’로 매우 매너가 없는 사람을 지칭한다. 우리로서는 도통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말들이지만 요즘 애들은 그냥 평상어나 다름없이 잘도 사용하고 있다.

특히 요즘 애들에게는 이미지나 영상이 글보다 더 익숙해져 있다. 책은 스스로 내용을 상상하면서 읽어야하지만 유튜브나 웹툰 등은 상상의 자유가 없다. 상상의 몫까지 이미 다 보여주고 설명해주니 이해가 빠르고 쉽다. 여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책을 볼 때도 읽는 것이 아니라 관람하려고 한다. 그러니 영상이 없는 책읽기가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가 없겠는가. 재미가 없으니 이해가 느리고, 이해가 느리니 긴 문장은 버거워지면서 긴 글 공포증을 앓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책속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문장을 낭독하고, 아름다운 자연에 가슴 설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답은 언제나 책속에 있었다.

고혜량/동량청마기념사업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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