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증(對症)입법’ 졸속법률 부추긴다
‘대증(對症)입법’ 졸속법률 부추긴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01.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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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재 (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학회장)
추위가 연일 계속된다. 낮은 기온만큼이나 습도도 매우 떨어져 있다. 활동량이 줄어드니 소화기능도 약화되고, 열독이 생기니 감기 바이러스가 쉽게 침투한다. 체질의 자생능력과 면역체계를 간과한 채, 너무나 뻔한 대처 방안만이 눈과 귀에 들어온다. 따뜻한 곳만 찾게되고 가려움증 해소를 위해 연고를 바르거나 항생제를 먹는다. 금방 나아지는듯 하지만, 재발된다. 고통이 멈추지 않는다. 일시적 괴로움을 억제하는데 그칠 처방 때문이다. 질환의 근본 치유가 불가능하다. 증상에 대처하는 대증요법(對症療法)의 상징적 과정이다. 체력을 키우는 습관과 환경개선으로 체질을 강건하게 만들어 각양의 질병을 이기도록 해야 한다. 항체를 키우고 면역력을 높여 병을 고쳐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몸과 마찬가지로 사회병리에 대처하는 방안도 그래야 한다. 눌러서 억제하는 방도보다는 문제의 근간을 발견하고 그 장애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비행(非行)이나 범죄 또는 사고가 발생하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혹은 그 사안의 발원요소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고뇌가 뒷전인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 등 정치권은 앞다퉈 감성적으로 접근하여 무조건 법률로 금지하거나 처벌 형량을 늘리는데 관심을 둔다. 인기영합과 같은 대중심리에 어필하고자 함이 까닭이다. 사건터지면 ‘뚝딱’, 입법과정을 살피면 여실히 드러난다. 이른바 ‘졸속입법’이 양산되는 것이다.

입양한 양부모의 엽기적 학대로 목숨을 잃은 ‘정인이’. ‘정인이 사건 방지법’으로 불러진 법률 3개가 사건이 조명된지 불과 6일 만에 고쳐졌다. 발의되고 해당 상임위와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한 시간이 그렇다. 번개불에 콩 볶듯한 속전이다. 국민적 공분을 가져올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더 세졌고, 아동학대 의무 신고대상자의 범위를 넓히는 등의 조문개정은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그렇게 전격적으로 고치게 됨에 따라 불거질 부작용은 없는지, 다른 형사법 체계와 충돌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최고 사형까지 가능한 징벌적 극형이 늘면 범죄 수법과 그 행태가 더 교묘하고 악랄해진다는 것이 범죄심리학의 기초다. 아동을 한정하는 연령의 법률적 구분도 형사법상 각각의 개별 법률에 통일되어 있지 않다.

천진했던 8세 소녀 ‘나영이’를 성폭행하고 지난 연말 징역 12년형으로 만기출소한 조두순과 관련한 ‘3법’ 개정도 그랬다. 아동청소년보호법, 전자장치부착법, 보호수용법 개정을 통해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고 가해자 이동반경을 더 제한했으며 더 강력히 격리시킨다는 내용이 골자다. 자세히 뜯어보면 범죄입증이 쉽지 않은 조항이 포함됐고, 실효성 또한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12년동안 가만히 있다가 조두순이 출소한다니, 급거 처리한 ‘대증입법’이라 할 만하다. 이와같이 사건이 발생하면 땜질식 법안 발의가 봇물 터지듯 하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무려 3만 여개에 이른다. 그중 3할이 넘는 1만 여개 법률은 해당 상임위내의 법률심사소위에 회부하지도 못했다. 논의조차 힘든 수준미달 개정안이라는 명징한 방증이다. 전체의 1할 남짓만이 ‘개정법률’ 리스트에 올랐다.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는 어떤 활동보다도 가치롭다.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진중해야 하며 처절한 골몰이 있어야 된다. 법을 바꾸는 일은 사회시스템을 변동시키는 것이다. 보완책이 절실하다. 법을 만들고 바꿈에 있어, 이로 인한 규제영향평가나 입법영향분석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 개정후 파장을 살펴야 한다. 특정 사업을 계획할 때 환경영향평가나 교통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평가내지는 분석을 담보할 국회법 개정안이 지금도 계류되어 있다. ‘인스탄트’, 졸속법률을 방지할 이 법의 통과야말로 서두를 일이다.

정승재 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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