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 소띠 기도
신축년 소띠 기도
  • 경남일보
  • 승인 2021.01.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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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대학교 교수)
경자년 일 년! 우리는 너무나 답답한 한 해를 보냈다. 이런 날벼락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희귀한 돌림병은 입이 있으되 입마개로 말 못하게 입을 막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되 만나지 못하게 발목을 묶었다. 사람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수많은 일터에는 주인만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한 쪽에서는 평생 작은 집 한 채 사기 어려워 아우성인데 수십억 원하는 아파트는 하늘 높은 줄 올라가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렇게 생사에 힘들어 하는데 위정자들은 일 년 내내 어린애 같이 싸움질이나 하고 있었으니 국민들은 이제 화병이 날 지경이다. 그래도 우리는 경자년 한 해를 쓰러지지 않고 살아내었다.

이제 새해 신축년을 맞이했다. 경자년 쥐가 우리에게 돌림병을 주었다면 신축년 소는 우리에게 힘을 주리라.

인간은 일찍이 소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살아왔다. 소를 통해 젖을 먹고 살아왔고, 소가 내어 놓은 고기로 먹고 살았으며, 소의 힘으로 일을 하면서 살아 왔다. 그래서 소는 오직 우리 인간에게 모든 것을 오롯이 내어 주기만 하면서 살아가는 참으로 유익한 동물이 아닐 수 없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밤새 송아지를 낳는 마굿간을 지키고 계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송아지가 커서 내다 팔기라도 하면 어미 소는 밤새 눈물을 흘리면서 울어대었다. 새끼를 잃은 어미 소의 슬픔도 보았다. 농가에서는 소가 재산이고 모든 것이다. 우리 조상은 소와 함께 살아갔던 것이다.

소는 불교에서 우리 중생의 본성을 상징한다. 중생은 번뇌와 망상으로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성의 소를 붙들어 매려고 참선을 하고 명상을 하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번뇌와 망상 그리고 탐진치(탐욕, 성냄, 어리석음) 삼독에서 벗어나면 검은 ‘참나’라는 자성의 소는 점차 흰 소가 된다. 끝내 나도 버리고 타고 가던 소도 버리니 성불이 된다. 사찰 법당 벽에 그려진 십우도 또는 심우도라는 그림이다. 중생의 각성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올해 신축년은 흰 소띠라고 하니 우리도 흰 소와 같이 자신의 마음을 찾아 성불의 길이라도 갔으면 좋으련만, 굳이 성불은 아니더라도 마음이라도 조금 편안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올 한 해 우리 모두 소처럼 성실하고, 소처럼 순수하고, 소처럼 힘 있게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소처럼 남에게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베푸는 한 해가 되길 스스로 다짐하고 또 올 해는 붓타께서 하신 말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을 새기면서 살아가길 기원한다. 어떤 유혹이나 말에 흔들리지 말고 자기 주관대로 걸림이 없이 바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한다. 올 해는 남의 눈치에 자기를 숨기며 살지 않고, 남과 비교하여 나를 버리고 살지 않고, 남에게 눈이 어두워 자기를 보지 않고 살지 않길 바라본다. 남이 아닌 오로지 나의 삶으로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한다’는 속담처럼 우리 모두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를 돌아보고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신축년 한 해 모두 아프지 말고 혹시라도 아프더라도 건강의 귀중함을 알게만 하고 쉬 나을 수 있길 기원한다. 화도 좀 덜 내고, 잔소리도 좀 덜 하고, 욕심도 좀 줄여가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한다.

또 사악한 돌림병이 하루 빨리 사라져 속 시원하게 말하고, 어디든 훨훨 다니고, 누구든 반갑게 만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한다.
 
임규홍 (경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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