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보며 살고 싶다
얼굴 보며 살고 싶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01.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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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량 (동량청마기념사업회이사)
 

“어! 마스크”, 외출하려고 승강기를 타고 나서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보통 때 같으면 마스크 안 쓴 게 뭐 대수냐 마는 요즘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무슨 큰 죄인이 된 느낌이다. 마침 승강기에는 다른 사람이 타지 않아 다행이다. 하나를 머리에 두면 둘은 흘러버리는 정신에 서둘러 집으로 되돌아가 마스크를 하고 나왔다.

이제 마스크는 일상의 소품이 되고 말았다. 추운 날씨라 모자까지 푹 눌러쓰면 거리는 온통 얼굴 없는 행렬 속에 눈만 걸어 다니고 있다. 여기에 진한 선글라스라도 끼게 된다면 이건 영락없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미행자이거나 뉴스에 나오는 강도의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냥 헛웃음이 나온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전까지만 해도 마스크에 대한 인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마스크를 쓴다는 것은 아픈 사람이라는 표식처럼 보여 아프면서도 마스크 쓰기를 꺼려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가면의 역할을 해주는 게 마스크였다. 가면은 나를 숨기고 ‘나 아닌 나’를 드러내는 기재로 활용되었다.

조선은 엄격한 신분사회였다. 천민이 양반에게 대들거나 욕을 했다가는 난장을 맞거나 멍석말이로 심하면 살아남기조차 힘들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탈을 쓴 경우였다. 오광대놀이의 재미는 ‘말뚝이의 재담’에 있다. 말뚝이 탈을 쓰고 풍자와 독설로 양반의 위선을 폭로하고 조롱해도 그건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양반들은 경제적인 지원까지 하며 판을 벌려 주었다. 그들은 탈을 쓰지 않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세상을 바랐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현대판 탈놀이도 있다. TV 방송에서 가면을 쓰고 노래하는 프로그램이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에 오롯이 노랫소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얼굴을 가린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모든 정보를 배제하여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오로지 노래실력만으로 승부를 가리기 위해서다. 가끔은 가면을 벗고 나오는 출연자를 보고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이라 놀라는 재밌는 상황만 있다면 좋으련만.

마스크로 인해 사람들은 표정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몸의 에너지는 표정을 통해 상대에게 전달되는데 마스크가 이를 막고 있으니 탈이다. 그대 눈빛의 작은 흔들림도 보고 싶고, 입가에 번지는 작은 미소 속에 곰살궂은 감정의 흐름도 느끼고 싶다.

‘마스크 속의 나’로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 쯤 끝나려나. 얼굴 마주보며 살고 싶다.

고혜량/동량청마기념사업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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