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돌아오지 못한
돌아온, 돌아오지 못한
  • 경남일보
  • 승인 2021.01.2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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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영 (시조시인·청명법률사무소)
 

정확히 40년 전 오늘, 내가 논산 훈련소로 입대한 날이다. 계엄령이 내려진 격랑의 시절, 나는 대학신문사 학생기자였고 신문은 계엄사령부에서 사전 검열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장교는 빨간 색연필로 우리가 편집한 기사와 사진들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검열필이 찍힌 편집지를 들고 나온 우리는 장교가 고친 기사의 일부는 원래대로 되바꾸고 일부는 아예 공란으로 만들어 신문을 발행했다. 그런데, 전격적인 배부·배포 금지령에 의해 신문은 통째로 행방을 감추었다. 그리고 휴교령과 함께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암울한 가을을 보내고 다음해 정초에 입대했던 것인데, 혹독한 추위 속의 빡빡한 훈련 과정에서 겪은 희로애락은 대체적으로 무덤덤하게 지나갔다. 신체는 힘들었지만 마음이 삭막해서인지 그냥 기계처럼 적응했다고나 할까.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났다. 사격훈련장에서 사선에 오르기 전 ‘얼 차리기’ 단체 훈련 과정에서 동기생 한 명의 목이 부러져 숨졌다. 2대 독자였던 동기생의 아버지는 울면서 용서를 비는 대대장을 껴안고 등을 토닥이며 함께 울었다. 단체 묵념을 하는 동안 각자의 폐부에서 우러난 뜨거운 슬픔이 매서운 추위를 관통하면서 논산벌판은 울음바다가 됐다.

그 울음바다가 잠시 웃음바다로 바뀐 적이 있었는데, 야간각개전투 훈련 때였다. 석식 후 현장으로 출발하기 전 위장 크림을 바른 서로의 시꺼먼 얼굴을 볼 때만 해도 그냥 우스꽝스런 정도였다. 훈련은 아군과 대항군으로 나누어 실시했는데, 나는 침투해 오다가 아군들의 총격에 사살돼야하는 대항군이었다.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대항군들은 순조롭게 쓰러졌다. 그런데, 몇몇은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몇 걸음 비틀거리거나 나무를 부둥켜안고 주르륵 미끄러져 내리는 비디오에, ‘으, 분하다, 어머니…’ 하는 오디오까지 겹쳐졌다. 이미 쓰러져 죽은 나에게 스며드는 차가운 땅바닥의 냉소 위로 조교들의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난사됐다. 야! 거기, 빨리 안 죽어? 죽고 싶어 환장했나?

귀대해서 위장크림을 지울 때 야차 같은 각자의 얼굴을 보며 모두 허리를 꺾으며 파안대소했다. 그 기괴한 표정에서 울려나온 웃음도 울음도 아닌 괴기한 그 소리는 지금도 뇌리에서 메아리를 일으킨다.

입대한 날로부터 약 30개월 만에 제대해 집으로 돌아왔지만, 뭔가 아직 돌아오지 못한 것이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40년. 나는 온전히 돌아온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대항군에서 아군으로 돌아왔는지, 아직도 대항군인지. 누가 돌아온 것이며, 돌아오지 못한 것은 누구인지…,

김성영 (시조시인·청명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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