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40)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40)
  • 경남일보
  • 승인 2021.01.2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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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12)
삼인 삼색 신앙수필 동인지 ‘파란, 찬란’(불휘미디어)의 두 번째 작가는 유희선이다. 유작가편에는 <물고기와 춤을> 외12편이 실려 있다. 유희선은 <나의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나는 신과 나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로 생각하게 되었다. 잘려 나가는 가지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가지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무수한 이유로 나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었고 어떤 합당한 이유가 없이도 포도나무의 가지로 살아간다. 우격다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 머무르도록 자비한 손길이 닿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신비를 설명한다는 것은 무모하다. 나는 머무름 속에서 구속과 자유를 동시에 느끼고 겸손과 감사를 배운다.”

이 머리말을 들으면 착실한 신자로 살아가는 보통의 크리스찬이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 말 속에 신자로서의 고뇌와 생활이 은연중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 수필가로서의 작가 정신은 그렇게 만만하고 평면적인 사람이 아님을 보여준다.

유희선은 15년간 키우던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그런 뒤 어항 속에다 물고기를 들여보내 키우게 된다. 수필은 <물고기와 춤을>이다.

“적막한 한낮, 거실에는 물고기들만이 움직이고 있다. 낮은 볼륨으로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 같다. 한 공간에서 최대한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소극적인 모양새가 마치 식물 같다. 십오년간 키우던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난 뒤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했건만 결국 물고기로 타협을 보게 된 것도 그런 만만함 때문이었을까.”

물고기 키우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그 다음 단락에서 반려견 이야기를 회고하고 물고기와의 다른 점을 말하고 있다.

“반려견과의 십오년은 한 해 한 해가 달랐다. 사람과 동물 간의 거리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절감케 되었다. 반면 물고기는 철저하게 다른 세상에서 온 그 무엇이었다. 오른 쪽 귀에서 왼쪽 귀로 마냥 흘러가는 음표처럼 따라 부를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인내심으로 귀 기울이고 애정 어린 관심을 쏟아야만 얼핏 보이는 세상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물고기와의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왜 그토록 소통하려 했을까? 지금 생각하니 물고기가 자꾸 죽었기 때문인 것 같다. 보살피는 데 많은 열을 올리면서 그쪽 세상이 더 궁금했다. 어항 앞에 붙들려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그들의 세계를 깊게 체험했다. 한 세계와의 진정한 만남은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니까 나와 물고기 이야기는 물고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 작가는 이어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소통하기 힘든 것들과 소통하려는 의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물고기는 보채지도 안달하지도 않는다. 방치하면 그저 허공에 매달려 흔들리는 모빌과 다름없다. 생명은 사물이 되어버릴 뿐이다. 나와 신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내가 물고기 입장이면 수면 밖의 세상은 세상은 인간과 신의 관계처럼 혼돈 그 자체일 것이다. 답은 쉽게 오지 않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과 상상은 침묵만이 가득한 이쪽과 저쪽 세계 사이로 무궁무진한 사색의 길을 내어 주었다. 닫혀 있던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현실을 초월하고 확장하는 충만함을 주는 반면에 서로의 영역에 대한 지극한 존중과 예의가 필요한 일임을 깨닫게 해준다.”

유작가는 어항 속과 어항 바깥의 세계를 인간과 신의 관계로 바라본다. 그 관계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그 영역에 대한 지극한 존중과 예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런 가운데 현실을 초월하고 충만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이제 나에겐 여섯 개의 어항에 셀 수 없이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다. 아름다운 꼬리로 풀라멩고 춤을 추며 구애하는 수컷의 현란한 몸짓에 나는 알 수 없는 평화를 느낀다.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이종(異種)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시인의 한 역할이기도 하지만 궁극은 모든 개인의 자아발견이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일 것이다. 물고기와 화자와의 초월적인 교섭을 유희선은 시인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는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의 새들, 동물들과의 대화를 그 신비를 듣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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