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여행밥상]淸海칼국수
[박재현의 여행밥상]淸海칼국수
  • 경남일보
  • 승인 2021.02.0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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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마음까지 뜨끈해지는 칼국수 한 그릇
 
남해읍 시장이 이렇게 큰지 몰랐다. 남해를 그리도 주사리방구치게 다녔지만, 바다와 마늘, 유자만 생각했지 장터를 생각지 못했다. 사실 나는 시골 장날을 참 좋아하고, 지방을 다닐 땐 꼭 장날이 아닌지 확인도 하는데, 마침 남해 장날이다.

봄날 장터에 나가보시라. 갖가지 나물을 파는 할매들이 오종종 봄볕을 쬐고 있다. 깨끗하게 딴 다래 순을 가져다 끓는 물에 적당히 삶아서 된장과 참기름을 넣고 젓가락으로 돌돌 비비다가 간을 보시라. 간이 잘 되었다 싶으면 마지막에 들기름을 적당히 넣고 비비면 맛이 환상이다. 고소하다. 참나물이나 쑥갓나물이나 미나리나물 같은 특별한 향과 맛과는 다른 묵직한 고소함이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맛이다. 다래 순은 데치고 나서 찬물에 씻는 거 잊지 마시라. 그래야 아삭하다. 다래 순은 고급 나물이다. 산에서 그 순을 따려면 쉽지 않다. 덩굴이 높게 올라가 있어 덩굴을 끄잡아 내려 순을 따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간 덩굴을 끌어내리기가 말처럼 잘 되면 누구나 그렇게 하겠지. 더구나 다래나무 순이 어느 건지 구별이나 잘 되겠나 말이다. 허니 숲으로 들어가 다래나무 순을 따려고 생각하지 마시라. 봄날 장터에 나가면 다래 순 많이 볼 수 있다. 다래 순을 파는 할매와 어떻게 해서 먹어야 맛나는지도 여쭤보시라. 자기만의 비법으로 무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요즘 매스컴에서 팍팍 뜨는 백 다방 사장도 다 그런 절차를 걸쳤을 거다. 할매와 주거니 받거니 말 이어붙이기를 하면서 할매들의 비법을 캐냈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그런 맛을 느끼려고 장날을 즐긴다. 그러니 남해출장 중 장날이라니 얼마나 기분 좋은 구경거리겠나 말이다. 시장을 들어가니 일단, 나물 파는 할매들이 오종종 앉아 있다. 표정은 여지없이 다 팔고 가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다래 순을 사고 그 옆 할매의 눈치를 살피며 미나리도 샀다. 처음 간 남해장터라 그저 이 골목에서 끝나겠지 싶었는데, 웬걸. 골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다른 골목이 나온다. 남해가 바다의 상징처럼 된 곳이니 당연, 해산물이 그득이다. 이렇게나 큰 시장은 순천시장이나 경주시장 버금이다. 다 구경하려면 한나절은 걸리겠다 싶다.

마침 점심때라 요기는 해야 할 것 같고, 할매에게 시장통에 맛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바로 답이다. 조기 옆으로 돌아가면 청해칼국숫집이 값도 싸고 맛나단다. 장담한다는 말과 함께. 사실, 시장통에 맛집이 많은 건 어느 장터나 비슷하다. 서민적이라고 해야 할까. 수더분하다고 해야 할까. 그냥 친근하다. 부담도 없다. 그러니 장터 맛집을 좋아할밖에.

멀리서 봐도 이름이 한자로 되어 있다. 웬만한 식당치고 한자로 된 집이 무슨 한정식집이나 그런데, 여긴 칼국수 집이 한자로 되어 있다. 청해(靑海). 맑은 바다라는 뜻이니, 딱 봐도 남해를 뜻하는 걸 거다. 주인의 재치가 대단하다.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가니 탁자는 딱 네 개다. 옹기종기 칼국수와 수제비를 기다리는 눈들이 서글서글하다. 모두 장날이라 온 사람들이라 여겼는데, 그렇지가 않다. 넥타이 부대도 있다. 뒤늦게 들어온 손님은 그저 빈 의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앉는다. 그런 걸음이 익숙하다. 한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일면식이 없어도 서로들 인사와 웃음을 놓치지 않는다. 주메뉴는 칼국수다. 수제비도 잘 나간다. 칼제비도 있다. 무조건 4000원이다. 웬만한 식당의 반값이다. 주방이라고 코딱지만 한 곳에서 중할매가 밀가루를 빗고, 썰고 끓이고 혼자 부산하다. 기다리는 손님은 줄줄인데, 언제 저걸 먹을 수 있나 걱정부터 된다. 그러나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펄펄 끓는 물이 연신 밀가루를 집어삼키고 있기 때문이다. 막 나온 칼국수는 무김치와 장이 전부다. 국물도 흥건해 해장하기에도 딱이다. 얼큰함이 눈에 들어온다. 딱 봐도 맛나단 소리가 이명처럼 들린다. 역시나다. 기똥차다.

 
 
여기까지 봄날에 갔던 청해칼국수집의 정경이었는데, 코로나로 어딜 가지 못하는 시절을 1년이나 넘겼다. 한겨울이다. 청해칼국수의 얼큰한 맛을 느끼고 싶었다. 아침이었다. 문을 열었을까 싶었지만 문은 슬며시 열린다. 주인 혼자 커피를 맛나게 드시다 날 보더니 깜짝 놀란다. 이 시간에 손님이라니! 하는 생각에서였겠지. 기억한다는 눈치다. 칼제비를 시키니 기계를 돌려 국수를 빼낸다. 전날 밀가루 반죽을 숙성해 쓴단다. 수제비도 설겅설겅 뜯어 넣는다. 그새 듬직한 그릇에 한가득 칼제비가 나온다.

“굴을 넉넉히 넣었어요!” 한다. 손님은 더 없었다. 후루룩 한 젓가락 입 안에 넣고 목구멍으로 넘긴 후 한갓지게 묻는다. 4000원이면 너무 싼 것이 아니냐고? 어릴 때 하도 가난해 시골 할머니들 돈도 없을 텐데, 그 정도면 적당한 가격이란다. 두 딸이 대구와 부산으로 시집 가 코로나 때문에 오지는 못한단다. 남편은 시장에서 옷을 수선한다고 하니,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한단다. 굴을 이리 많이 넣어줘서 남겠어요? 하니, 겨울엔 굴, 봄에는 바지락, 여름엔 새우나 멍게를 넣는단다. 사계절 다른 해산물이 들어가니 맛도 다르겠다. 겨울 남해 생선은 싱싱하고 맛나다는 말도 곁들인다. 국물까지 싹 비우니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벽에는 어느 선승의 그림인지 부처가 미소를 짓고 있다. 주인 중할매의 미소만큼이나 후덕하다.

시가 절로 우러난다. 칼칼하고 부드럽게 감기는 맛이 입 안을 호강시킨다. 거기다 한 그릇을 다 비워갈 때 ‘더 드실라우?’ 묻는 말투가 정감 나다. 더 주실 수 있나요? 묻기가 미안할 정도다. 아예, 처음부터 ‘많이 주세요!’ 물어 달란다. 곱빼기 할 필요가 없는데도 그냥 호로록 호로록 들어간다. ‘아! 시원하다!’ 이 말이 그냥 나온다. 기분도 좋다. 맛난 음식이 나왔을 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은 칼국수를 다 먹고 나서도 그대로다. 맛나고 기분 좋게 먹었다는 표현이다. 다음에 다시 올 거라는 것은 당연, 확신이다. 공짜로 시 한 수까지 얻었으니 이런 복이 더 있겠나 싶다. 제목은 ‘淸海칼국수’다.

 
 
탁자 네 개에는 따개비처럼 달라붙어 쉴 새 없이 파도를 후룩후룩 들이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시골 장터를 찾는 수수한 사람들 저쪽에 먼저 앉은 사람들을 알아 같이 앉고 싶어도 일면식이 없는 남은 빈자리를 채우면 그만.

메뉴판에는 수제비 4천 원 칼국수 4천 원이 전부다.

눈높이에서 주문을 받으며 밀가루 반죽에 바닷바람을 불어넣는 할매의 미소에 뭉근한 바다 향이 날린다.

아니나 다를까 칼국수에 수제비를 섞은 칼제비에는 홍합이 가득하고 보드랍게 넘어가는 칼국수에 딸려 들어오는 미끈한 수제비는 씹을 틈도 없이 그물에 걸린 고기처럼 빈 배로 그득그득 들어찬다.

모자라지 않을까 눈초리로 비워가는 내 그릇을 보더니 그새 덤 그릇을 내오는 고마운 본새라면 여지없는 어머니 마음

국물도 없이 싹 비워 내고 얼마에요 물으니 ‘우리 집엔 곱빼기 없어요! 4천 원이에요!’ 두부모 자르듯 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그 말속에선 덤을 포장하고픈 마음이 없다는 단호한 정도 서리는데

땀을 닦으며 문을 나서지만, 자꾸 淸海칼국수 간판을 뒤돌아보는 것도 다 그 때문인 것을.

*남해읍 장터 뒷골목에 있는 칼국수집, 상호가 淸海칼국수다. 전화번호는 055-862-241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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