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처럼만 해도
소처럼만 해도
  • 경남일보
  • 승인 2021.02.0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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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전 진주경찰서장)
 

소싸움, 개싸움, 닭싸움 등 사람들은 스스로의 공격성을 다른 동물에게 투사시켜 즐기는 고약한 심리가 있다. 그런데 그러한 싸움들 중에서도 좀 의젓하고 늠름하며 보다 신사적인 것이 소싸움이 아닐까 싶다.

소싸움이 있는 모래사장에는 야성과 함성, 긴장과 환호가 뒤엉켜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관중은 자신도 모르게 소싸움의 팽팽한 긴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전율하며 흥분하고 환호한다. 닭과 개의 싸움인 투계나 투견처럼 처절하게 뒤엉키는 것도 아니다. 우리 소싸움은 원래 목동들이 심심풀이로 시작한 것으로, 전통 민속 특유의 정겨운 흙냄새며 풀냄새가 배어 있기도 하다.

소싸움의 최대 특징은 저 싱싱한 초원처럼 태고의 야성(野性)이 넘치는 데 있다. 인간에 길들여지기 전부터 핏속에 흐르고 있는 야성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야성은 때로 거칠지만 순수하고 정직하다. 그래서 싸움에 패한 소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 어떤 핑계나 변명, 비열한 뒤집기 계책도 없다.

소만큼 우직한 동물이 없다. 하지만 이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규칙과 원칙을 따르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충만한 것에 감탄하게 된다. 소싸움을 지켜보는 진정한 매력도 이긴 쪽의 의젓함보다 진 쪽의 깨끗한 결과 승복에 있다고 할 것이다. 계책과 모략이 판치는 우리들 인간사회, 위선과 궤변이 난무하고, 오기와 독기가 넘치는 우리의 정치판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우리 민족이 소싸움을 좋아하는 진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싸움대회를 민중의 축제로 승화시키는 것도 좋고, 국제적인 문화관광행사로 격상시키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소싸움대회를 눈여겨보아야 할 대상은 이 나라의 ‘싸움닭’들이 아닌가 한다. 원칙과 절차도 깔아뭉개고 야합하는 이들, 지고도 이겼다고 강변하는 이들, 오기와 독기로 밀어붙이는 뻔뻔한 이들은 싸움닭의 나쁜 점만을 빼닮고 있다. 정녕 이들이 소싸움의 순수하고 정직한 야성을 먼저 배워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민초들은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져, 구심점도 없고 비전도 없이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 감각마저 잃고 있다. 밤하늘의 별을 따지 못해서 불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우러러 볼 별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무슨 말을 할 의욕도 없이 침묵하는 이들에게 싸움닭의 오기와 독기란 허황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소싸움이라도 지켜보며 저 힘차고 정직한 야성을 만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새해는 신축년 소띠 해다. 소처럼 순수하고 우직하게만 살아도 좋은 세상이 될 성 싶다.


강선주 (전 진주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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