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와 혁명수비대
공수처와 혁명수비대
  • 경남일보
  • 승인 2021.02.0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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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작년부터 귀에 익숙한 국가기관의 이름이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다. 이름만 척 들어봐도 소위 끗발이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이를 줄여서 그냥저냥 공수처라고도 한다. 여야가 작년 일 년 내내 싸우는 걸 보니, 이것이 정치적인 이해득실에 있어서 매우 민감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수처는 최근에 출범했고, 또 헌법재판소로부터 법적인 정당성마저 얻었다. 설립 자체에 위헌의 소지가 많다는 전문가들의 말이 많았지만, 이제 이런저런 말거리로부터 벗어난 홀가분한 상태에서 첫 발걸음을 내디디려고 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이 공수처를 두고 검찰개혁의 상관물, 아니면 검찰 길들이기의 결과물 정도로 보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긴가민가하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업무나 기능에 있어서 제 나름의 독립성을 중시하는 국가기관이 옥상옥의 이중구조를 가지는 것은 썩 잦은 게 아니다. 먼 예는 나치즘의 저 특별법원이 있었고, 비근한 예로는 중국의 국가감찰위원회가 엄존하고 있다. 히틀러가 정적을 제거하는 데 있어서 법원이 협조를 하려들지 않으니, 옥상옥의 특별법원을 만들어버린 게 유명한 역사적인 선례다. 먼 예와 비근한 예 가운데는 이란의 혁명수비대 창설이 이에 못지않게 유명하다. 최근에 우리 선박을 나포해 여태껏 으름장을 놓고 있는 악명 높은 조직이다. 성직자 호메이니는 1979년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혁명에 성공을 거두었을 때, 무소불위의 최고 지도자가 됐다. 삼권은 물론 군사권까지 장악했다. 나라 이름은 이란이슬람공화국으로 바꾸었다. 말이 공화제이지 사실은 신정(神政) 체제였다.

이란은 4년에 한 번씩 대통령을 뽑는다. 하지만 정치권력은 이슬람 최고 성직자에게 종신토록 부여한다. 이란의 대통령은 외교권도 군사권도 없다. 다른 나라의 총리보다 끗발이 낮다. 이란의 제2인자는 혁명수비대장이다. 혁명수비대는 40년 넘는 역사를 가졌다. 호메이니가 정규군의 쿠데타를 예방하기 위해 군 위의 군을 만들었던 거다. 혁명수비대장이 대통령의 뺨을 쳤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구조에 기인한다.

우리의 경우에, 공수처가 그런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는 없지만, 검찰 위의 검찰로 위세를 부릴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여당은 앞으로 검찰에게서 수사권을 빼앗는다고 하지 않는가? 수사권 없는 검찰과,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지는 공수처. 이를 가리켜 옥상옥의 이중구조라고 말하는 거다.

이와 같이 공수처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긍정과 부정, 기능과 역기능의 갈림길에 놓이게 될 것이다. 약자보다 강자에게, 야당보다 여당에, 상대적인 무력보다 권력에 저울의 추가 유리하게 기울어진다면, 어떤 공수처가 될까? 국정농단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고 또 보수 세력이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진보 진영은 내년 대선에서도 정권을 재창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만약 이런 상황 속에서 공수처가 정권 안보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그것은 향후 5년간 한국판 혁명수비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국민은 헌법 기관의 검찰보다 끗발 있는 법률 기관의 공수처의 존재를 인정해준 헌법재판소에다, 법리적인 모순 및 책임을 물어야 하나? 어쨌거나, 하기 나름의 공수처인 게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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