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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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2.0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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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13)
"유희선 시인의 수필 ‘물고기와 춤을’ 마지막 대목을 다시 이어본다. “이제 나에게 여섯 개의 어항에 셀 수 없이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다. 아름다운 꼬리로 플라맹고 춤을 추며 구애하는 수컷의 현란한 몸짓에 나는 알 수 없는 평화를 느낀다.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이종(異種)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시인의 한 역할이기도 하지만 궁극은 모든 개인의 자아발견이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일 것이다."

우리는 고해소에 들어가듯 자신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듣는 훈련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 안의 어둠과 무질서는 아픈 귀를 통과해 밖으로 나온다. 그 안팎의 거리가 신과 나의 거리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보면 유시인이 수필가이기 전에 시인이라는 점을 깔끔하고 세련된 문장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물고기의 플라맹고 춤을 추며 구애하는 몸짓에서 이종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정서적 동질성을 발견한다는 표현이 이채롭다. 무엇보다 천주교 신자가 고백소에 들어가서 사제에게 하는 말을 스스로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스스로의 귀를 통과해 나오는 것으로 자유, 또는 춤이라는 형식의 유열에 빠질 수 있음을 말하는데 귀를 중심으로 안팎의 거리가 신과 인간의 거리라는 인식이 놀랍다.

유시인은 그 다음 말에서 “기미나 기척을 따라 고통스런 미로를 빠져 나올 때 우리는 어떻게 춤추지 않을 수 있을까?” 고해 다음의 자유로움과 기쁨의 춤을 설명하면서 물고기의 플래맹고 춤을 떠올리고 있다. 신과 인간과의 거리가 좁혀진 섭리 같은 순간이 아니겠는가, 하고 독자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유희선 시인의 다음 수필은 <새로운 눈물>이다. “눈물에도 새로운 눈물과 새롭지 않은 눈물이 있다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마음이 머물렀다. 우리는 과연 지나간 일에 대해 새로운 눈물을 흘리고 살까? 혹시 지나간 일에 오래된 눈물만을 흘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 눈물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듯하다. 그러나 나는 어떤 감상에 젖어 을컥하는 마치 봄날에 내리는 눈발처럼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눈물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북받치는 슬픔을 어쩌지 못해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오열한 적이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슬픔은 어디로 갔을까? 망각일까, 포기일까, 말끔한 치유였을까? 그 슬픔은 어쩌면 손이 닿지 않는 내면 깊숙한 안전지대로 스며들어 은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유희선 시인은 ‘새로운 눈물’을 흘리는 사례를 든다. “그날 나는 E 스트라우트의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곧 눈이 쏟아질 것 같은 증상에 휩싸여 있었다.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나는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래된 슬픔이 잿빛 무거운 하늘을 찢고 함박눈처럼 환하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깊은 슬픔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밋밋했을지도 모를 책 한 권이 내게는 새로운 눈물을 흘리게 한 사건이 되었다. 자기 연민으로 단단해진 슬픔을 녹이고 새로운 차원으로 건너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소설 책 한 권의 내용이 새로운 슬픔의 조건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다. 유시인의 감성과 독서력이 그런 기적의 한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이 수필은 감성과 지성이 지나간 슬픔을 끌어내고 그것을 새로운 차원으로 건너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된 것이다. 거기 눈물이 흐른다. 그것이 시가 아닐까? 유시인은 이 대목에서 좋은 시인의 자질을 십분 보여준다.

유희선 작품들은 소재의 선택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지금 이야기할 수필은 아파트 아래 위층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특수한 관계, 소리로만 그 식구들의 생활 공간과 애환을 재구성하는 이야기다. 수필 제목은 <소리들>이었다. “민수네가 아래층에 이사온지 이십여년이 흘렀다. 그때 민수는 백일도 지나지 않은 갓난 아기였다. 민수네는 남부러울 것 없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아빠는 공무원이고 엄마는 학교 선생이었다. 위로 두 누나는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늦동이였던 민수는 한 가정의 화룡점정인 듯 엄마 아빠의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게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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