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의 차례상, 향아설위를 되새긴다
코로나시대의 차례상, 향아설위를 되새긴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02.0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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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완 (창원시의원)
‘명절날 나는 엄매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으로 시작하는 백석 시인의 ‘여우난골족’ 시에는 100년 전 설날 풍경이 정감 있게 잘 표현되어 있다.

민족대이동이 발생하던 설날이 다가오지만 이번 설날은 예년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코로나19 방역책으로 ‘5인 이상 집합금지’ 지침을 설 연휴가 끝나는 14일까지 유지키로 하면서 명절 차례상 앞에 삼대가 모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 전염병 확산세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 풍경까지 삼켜버린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의 변화보다 더 큰 변화가 코로나19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외부 요인에 의한 변화라 하더라도 거부할 수 없는 변화라면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서 그동안 묵혀두었던 숙제를 조금씩 풀어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객관적인 여건이 이전의 설날과 완전히 다른 상황인 만큼 이번 기회를 차례상을 비롯한 명절음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이전까지의 명절 풍경을 떠올려 보자. 평등한 명절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차례상 준비는 여성들이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여성들에게 명절 연휴의 첫날은 차례상 준비로 고단한 날일 뿐이다. 차례상 준비가 끝나더라도 그 다음은 끼니때마다 대가족의 밥상을 차려야 했으므로 부엌에서 나올 수 있는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렇게 고생해서 준비한 명절음식은 명절연휴가 끝날 때쯤이면 애물단지가 되곤 했다. 차례상에 오르는 음식 중에는 현대인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음식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설날은 차례상 앞에 모여 앉을 수 있는 일가친지가 네 명으로 제한된다. 음식을 준비할 사람도, 음식을 먹어줄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차례상을 이전과 같이 갖출 것 다 갖추어 준비할 것인지, 아니면 간소하게 준비할 것인지를 두고 가족구성원들이 의견이라도 내어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이참에 차례상의 간소화뿐만 아니라 차례음식과 끼니음식을 따로 장만하지 않아도 되도록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의 종류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가족구성원들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은 어떨까?

동학의 2세 교주 해월 최시형은 유교적 전통관이 지금보다 더 견고했던 조선후기에 이미 ‘향아설위(向我設位)’의 제사법을 제자들에게 설파했다. 향아설위는 제사 지낼 때 벽을 향하여 진설(陳設)하지 않고 ‘나’를 향해 진설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유교식 제사법은 벽을 향해 음식을 차리는‘향벽설위(向壁設位)’에 해당된다.

해월은 “나의 부모는 첫 조상으로부터 몇 만대에 이르도록 혈기를 계승하여 나에게 이른 것이요, 또 부모의 심령은 한울님으로부터 몇 만대를 이어 나에게 이른 것이니 부모가 죽은 뒤에도 혈기는 나에게 남아있는 것이요, 심령과 정신도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제사를 받들고 위를 베푸는 것은 그 자손을 위하는 것이 본위이니, 평상시에 식사를 하듯이 위를 베푼 뒤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심고하고, 부모가 살아계실 때의 교훈과 남기신 사업의 뜻을 생각하면서 맹세하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향아설위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제사의 본위는 자손을 위하는 것이므로 평상시 식사하듯 제사상을 차리되, 무엇보다도 부모의 유훈과 유지를 잊지 않고 받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해월신사의 가르침을 비대면 명절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함께 되새겨 보자.

이우완 창원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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