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곤의 상상력 보다 못한 치수대책
장재곤의 상상력 보다 못한 치수대책
  • 경남일보
  • 승인 2021.02.0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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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1796년 5월 8일 장재곤은 경천동지할 치수책 하나를 내 놓았다. 홍수 때마다 물난리로 폐허가 되는 남강 하류지역 토지를 옥토로 만들고, 백성들이 물난리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계책이었다. 세부설계와 인력동원 계획, 기대효과를 포함한 남강치수대책을 만들어 왕실에 건의문을 올렸다.

장재곤의 치수대책은 남강 상류 진주의 광탄(廣灘:너우니)과 지소두(紙所頭)에서 물길을 새로 뚫어 사천 바다로 물을 흘려보내고, 지소두 아래 제방을 쌓아 물을 범람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해마다 침수피해를 입고 있는 진주 의령 함안 칠원 창녕 창원 김해 밀양 양산 등 13개 고을의 농지가 장차 훌륭한 옥토가 될 것이라는 기대효과도 제시했다. 인력은 하류 수혜지역의 주민들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방안도 덧붙였다.

장재곤의 200년 전 치수대책은 정조실록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국정을 총괄하던 비변사는 장재곤의 치수 건의안이 ‘실현가능성이 없는 허황된 내용’이라는 경상도 관찰사 이태영(李泰永)의 조사보고에 따라 없었던 일로 한다. 그리고 허황된 건의서 남발 방지책을 하달한다. 장재곤은 이 때문에 호적에도 없는 사람이 되었고, 간사한 사람, 즉 ‘간민(姦民) 장재곤(張載坤)’으로 실록에 기록되는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장재곤의 구상은 그로부터 100년 후 빛을 보기 시작한다. 1910년대 진주의 최대 이슈는 홍수방지를 위한 ‘남강댐 건설’과 ‘도청 이전 반대’ 두 가지였다. 오랜 숙원의 출발점이 된다. 이후 진주 시민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도청은 부산으로 이전했지만, 남강댐 건설은 1937년부터 시작된다. 장재곤의 구상과 거의 일치하는 방식이었다. 너우니 일원의 남강댐 공사는 사천만 방수로 개설부터 시작돼 해방과 전란을 거치면서 1969년 완공된다. 170여 년 만에 장재곤의 꿈이 실현된 셈이다.

장황한 남강댐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다름 아니다. 최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한국수자원공사의 남강댐 안전성강화(치수증대)사업 때문이다. 물 폭탄을 머리에 이고 사는 진주 사람들의 정서는 각별하다. 생사가 걸려있는 일이기에 수백 년 동안 장재곤 같은 사람이 목숨걸고 간언해 왔고, 민감하게 대응해 왔다. 지역정서가 이런데도 한수원은 남강댐 관련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의 민심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30년 전 남강댐 숭상공사 때도 그랬고, 2000년 대 후반 남강댐 치수증대를 통한 부산 물 공급 시도 당시도 그랬다. 이번에는 ‘댐 안전성 강화’라 해 놓고 ‘방류량을 지금의 두 배로 한다’니 누가 동의하겠는가. 하류지역의 안전성은 도외시한 치수대책은 재난관리 기본원칙도 없다는 의미다.

지역주민의 삶과 직결되는 남강댐 공사는 구체적인 내용을 먼저 알려야 한다. 그리고 안전대책을 세운 다음 추진하는 것이 상식이다. 일방적으로 밀어 부치다 반대여론이 나오자 전문용어까지 써 가면서 사실과 다르다고만 우긴다. ‘댐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파라펫월을 높이는 것이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물이 넘쳐흐르는 월류에 대비한 벽을 설치하기 때문에 댐을 높이는 것이 아니란다. ‘최대 방류량을 두 배로 늘려도 평소 방류량은 지금과 달라지지 않는다’는 한수원의 답변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불과 수개월 전 발생한 홍수 피해도 잊은 모양이다. 주민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댐 공사는 안전성강화든 치수증대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충분한 안전 대책을 세우는 등 지역주민이 공감할 수 있는 치수대책이 먼저 나와야 된다. 21세기 첨단 과학기술시대 대한민국 정부의 치수대책이 18세기 말 평범한 백성 장재곤의 상상력 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한중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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