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맞이 단상(斷想)
설맞이 단상(斷想)
  • 경남일보
  • 승인 2021.02.0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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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영 (마루문학회장)
 

2021년 신축년 새해도 한 달이 지났다. 서력(西曆)을 쓰게 되면서 간지법 혹은 갑자운지법은 역법으로서의 의미를 잃었지만 띠의 의미와 운세를 점치는 기재로서는 아직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올해는 소의 해다. 소의 해의 시작을 언제로 할 것인지도 여전히 어렵다. 달력은 1월 1일부터 기산하지만 설을 쇠는 우리 입맛의 정월 초하루는 그래도 음력 설이다. 해를 숭상하는 옛 사람은 동지(冬至)를, 농사를 짓는 옛사람은 입춘(立春)을 해의 시작으로 잡았었다. 어쨌거나 지구가 도는 태양의 공전 주기로 세(歲)를 먹임에는 변함이 없다.

해 바뀜을 왜 그렇게 기다렸을까. 아마도 묵은해의 안 풀림과 꼬인 일을 벗어 던지고 새해부터는 새롭게 잘 풀렸으면 하는 기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세(歲)의 파자는 의미가 남다르다. 세(歲)에는 크게 걸음 보(步)와 개 술(戌)이 들어있다. 걸음 보(步)에 들어 있는 갈지(止)는 발자국이다. 갑골문에는 발자국 두 개를 찍어 걸음을 나타냈다. 술(戌)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미완(未完)의 글자지만 설문해자에서는 멸(滅)이라 했다. 소멸을 의미한다. 회갑을 완성하는 마지막이 소멸을 의미하는 술이라니.

술(戌) 이야기를 조금 더 풀자. 술은 늘 조금 모자람이다. 띠에 있어서도 개띠는 11번째이고 방위에 있어서도 정북의 15도 못 미치는 북서를 의미한다. 술시(戌時)는 저녁 7시에서 9시로 하루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가끔 남정네들은 술시가 술 마시는 시간이라고 아쉬움에 한잔 더 한잔 더 하다가 개가 되고 말았다는 우스개도 이 술(戌)이다. 술이 아쉬움이 없으려면 획(劃)을 첨해야 한다. 옛날에는 한 획을 그어 성(成)으로 씀으로 순도 100의 순금을 뜻했고 완성 수(數), 막바지를 의미했다.

이 때 그은 한 획은 바로 깨달음이다. 해를 보냄에 있어 깨달음이 없고 반성이 없으면 멸(滅)하고 이 반성을 통한 깨달음을 얻으면 해는 완성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세배(歲拜)는 완성한 해에 대한 경배이며 수많은 깨달음의 어른에 대한 경배인 것이다. 깨달음이 없으면 그 순간 쇠락한 노인이 되고 만다. 그래서 섣달그믐에 잠들면 눈썹이 새하얗게 쇤다고 하지 않는가. 세월의 오고감의 관계성 속에서 술(戌)처럼 딱 하나 모자람을 채우지 못해 완성(完成)에 이르지 못했다면 새해에는 겸손의 배(拜)를 통해 깨달음을 이루라. 홍익(弘益)하라는 조상의 지혜가 세배임을 세기는 지혜로운 설이 될 것이다.

안채영/마루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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