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공직자가 살아가는 법
은퇴한 공직자가 살아가는 법
  • 경남일보
  • 승인 2021.02.0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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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호 (선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세계미래도시연구원 원장)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필자도 33년을 공직에서 보낸 후 2년 전에 퇴직하고 지금은 다른 분야에서 인생2막을 보내고 있는 은퇴공직자다. 공직동기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인데, 각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한 동기의 아이디어로 단체카톡방에 ‘나를 알리는 릴레이 토론방’이 개설됐다. 하루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공직생활에서의 에피소드와 공직이후 근황,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올리고 있는데 이 글을 읽고 토론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때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어려운 개인사나 투병기를 접하고선 먹먹함에 눈시울을 붉히는 순간도 있다. 원래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동기들인데 지금은 함께 모일 수가 없으니 이를 대신한 일종의 비대면 모임인 셈이다. 코로나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풍속도다.

100여명의 동기 중 현재 반 정도가 글을 올렸는데 살아가는 방식과 삶의 길이 저마다 다르다. 행정고시를 합격해 정부의 고위직까지 올라가서 퇴직한 동기들이라 일반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들과는 다소 차이가 나지만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첫 번째 부류는 대학교 총장이나 정부산하 기관장 등 공직유관기관에서 보내는 동기들이다. 교육부나 경제부처 출신들이라 그나마 아직 쓸모가 있거나 관운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동기들 모임의 물주역할을 많이 한다.

두 번째는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개인의 취미생활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강의는 한 두 과목을 맡아 일주일에 한번정도 출강하기에 비교적 시간이 많은 편이다.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하거나 동해안해파랑길이나 100대 명산을 종주하는 동기들도 꽤나 된다.

세 번째는 고향으로 낙향해 약간의 농삿일과 함께 지역사회운동에 참가하면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는 동기들이 있다. 스스로의 땀을 소중히 여기면서 지역사회에서 삶의 새로운 역할을 찾고 있다. 원래 자연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안분지족의 여유가 무엇인지를 알기에 스스로 행복해 한다. 이들 중에서 시장이나 군수가 나왔으면 좋겠다.

네 번째 부류는 어려운 전문직종의 자격시험에 도전해 감정평가사나 법무사와 같은 전문파트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동기들이다. 육십 가까이서 다년간 수험생활을 시작하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당당히 합격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동기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만의 영구직장을 갖게 되어서인지 사는 게 아주 열심이고 자기만족도도 비교적 높다. 이 중에는 주택관리사 시험에 합격해 아파트관리사무소장을 맡고 있는 동기도 있다. 예전 공직의 계급장은 다 떼버리고 숭고한 생업으로 삶의 한가운데 서있데 참으로 존경스럽다.

필자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지방자치와 리더십분야를 강의하고 있고, 세계미래도시연구원을 운영하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자문이나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다만 특이한 점은 공직은퇴 직후 3개월간 20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쓴 ‘순례, 세상을 걷다’라는 책을 내어 여행작가로 데뷔한 것이다. 각종 포럼이나 교육과정에 강연도 다니면서 그간의 무딘 삶에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이제 설을 보내고 나면 봄이 올 것이다. 아마 준비된 은퇴자에게는 따뜻한 봄 길이 기다리고 있다.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이 있다 /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정호승 시인의 ‘봄 길’이라는 시가 문득 생각이 나는 밤이다.
 
오동호/선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세계미래도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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