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42)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42)
  • 경남일보
  • 승인 2021.02.1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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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14)
유희선 시인의 수필 <소리들> 이야기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소재가 특이하여 독자들의 눈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아파트 아래 위층에 사는 이들이 겪는 층간 소음 문제라면 흔히 있는 것인데 이 작품의 소리들은 20여년간 아래층에 사는 집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집약하는 것이었다. 민수는 이 집의 늦동이었고 위로 누나 둘이 있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고 어머니는 교사였다.

이야기는 갓난아기 민수의 울음소리에서 시작된다.

“민수는 새벽 두세시경이면 울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 잠자리에 들던 나로서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지만 아기를 어르는 아빠의 반쯤 감긴 목소리만 들려왔다. 아마 그 몇 달 간이 민수엄마가 늦둥이 아들을 낳고 누렸던 최고의 호사였을 지도 모른다. 결국 민수가 두 살이 되기 전에 초등학교 교사였던 민수 엄마는 휴직하고 시골 친정집에 내려갔다. 아이를 돌보던 집에서 낮밤이 바뀌게 되어 그것을 바로잡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얼핏 들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몇 년을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다가 어느날부턴가 아예 민수에게만 집중하게 되었다. 비로소 민수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시점이었던 것 같다.”

민수네는 이때부터 첩첩 산중에 드는 지옥같은 생활이 도래한 듯했다.

“몇 번 인터폰도 하고 아래층에 내려가 문을 두드리기도 했었지만 그날은 신고라도 해야 할지 더는 참을 수 없는 마음이었다. 도대체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민수 엄마의 화와 조급함은 이해의 도를 넘는 것 같아 작정하고 내려갔었다. 그런데 문 앞에서 그만, 민수 엄마의 처절한 탄식과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끝까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현실에 무릎을 꿇고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문 저쪽의 일이었지만 그 순간 쿵! 내려앉는 아픔이 온몸에 번졌다. 그렇다 ! 왜 내게 이런 일이….”

유 시인은 그때 이후 어떤 식의 우려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사랑과 고통에 섣불리 간섭할 수 없으며,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는 마음으로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뒤돌아보니 그 가파른 몇 년의 길을 위태롭게 넘어선 뒤 어느 한낮에 들려오던 오카리나 소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도 매일의 일상처럼 늘 소리로 민수네 안부를 듣는다. 일어나라는 소리부터 양치하라는 소리, 빨리 밥 먹으라, 한편 일절 들리지 않는 민수 아빠의 침묵 소리까지 소리, 소리들…. 한 가족사의 큰 맥락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보일 듯 보이지 않게 굽이 굽이 흘러가고 있다. 어느듯 스무 해라니! 민수는 청년이 다 되었다. 남다른 음감이 있는 민수에게 첼로를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소리는 어듬 속 광맥을 따라 먼 길을 오고 있다. 수직으로 일어나 멋지게 피어오르길 민수야 홧팅!! 외쳐 준다.”

화자의 아래층은 이렇게 20년을 흘쩍 지나갔다 시인의 20년도 아래층 소리들에 얹혀 훌쩍 지나간 것이다. 유희선 시인에게는 소리가 유달리 다가오는 것 같다. 어느새 <종소리 울려 퍼지고> 있다. 유 시인은 종소리를 새문안교회 신축 설계상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새문안교회 설계로 ‘아키텍쳐 마스터 프리아이즈’를 수상한 이은석 교수와 그에 관련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요즘엔 한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교회를 많이 짓지 않는다고 한다. 42개 부문 수상작 중에서도 동 교회가 유일한 교회 건축이라고 한다. 유럽의 대성당 시대가 우리나라에 도래한 것일까?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13층이라는 거대한 규모에 관심이 가는 것은 아니다. 오직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십자가가 걸린 가장 높은 곳의 종탑 때문이었다.”

유 시인은 종소리가 사라진 것에 대해 서운함이 컸다는 것을 지적한다. 유년의 집 근처에는 혜화동 성당이 있었다. 유 시인은 20대 초반에 스스로 성당을 찾아갔고 지금껏 그 발걸음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동네 뒷산을 산책하다가 멀리 성당에서 종소리가 들려오면 어릴 때 추억이 아슴프레 떠올랐다. 그,런데 그 종소리가 누군가애게는 공해이고 소음이라고 민원이 들어와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그런 상황임에도 새로 세워진 저 거대한 종탑은 무엇일까. 교회 부속물로서 상징이며 장식일까. 언제 저 종소리는 울려 퍼질까. (중략) 노트르담 성당에 화재가 났을 때는 사고 후 48시간 시점에 프랑스의 93개 대성당에서는 동시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슬러 우리나라 3.1운동 때에도 교회 종소리는 타종과 함께 그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은석 교수는 교회를 설계힐 때 어머니의 품을 상상하며 재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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