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추억
설날의 추억
  • 경남일보
  • 승인 2021.02.1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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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남 (성심정공대표)
 

 

올해 설은 코로나로 일상과 다름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어릴 적 느끼던 가슴 설레고 흥분된 기분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설 준비는 한과 만들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먼저 곱게 빻아온 찹쌀가루를 약간 발효시키고 쪄서 밀대로 얇게 밀어 따뜻한 방바닥에서 말린다, 말린 반죽을 끓는 기름에 넣으면 꽃같이 피어났다. 엄마는 유과가 잘 이는 걸 보니 올해는 살림이 확 일어나겠다고 좋아하셨다. 완성된 유과를 대바구니에 담고 바람이 잘 통하는 선반에 쪼로미 정렬해 놓으신다. 그리고 두부도 만드셨다. 모양이 반듯한 두부는 설에 쓰려고 찬물에 담가 두고, 가장자리가 찌그러진 두부는 우리의 몫이었다. 두부를 잘라서 양념장에 찍어 한입 먹던 고소한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먹거리 준비와 함께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이불 홑청을 빨아 빳빳이 풀을 먹였다. 엄마는 마루에 이불을 짝 펼쳐 놓고 풀 먹인 홑청을 이리 땅기고 저리 당겨 귀를 잘 맞추어 큰 바늘로 꿰매신다. 바늘이 잘 안 들어가면 머리에 쓱 문질러 기우신다. 노래를 흥얼거리시며 이불 꿰매던 엄마의 모습을 보며 항상 농사일만 하시던 모습에서 느끼지 못한 편안함을 느끼곤 했다.

육 남매인 우리 형제들의 설전 큰 행사 중 하나는 목욕이었다. 소죽을 끓이던 가마솥을 깨끗이 씻어 물을 한솥 데워서 목욕한다. 가마솥 입구를 천막으로 가려 가림막을 만들고 따뜻한 물속에 앉아 몸을 불릴 때면 혹시 누가 솥뚜껑을 닫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엄마의 굵고 큰 손으로 등을 몇 번 쓱쓱 밀고 손, 발, 팔, 다리를 뽀득뽀득 밀고 나면 목욕 끝. 깨끗한 몸과 새로 꿰맨 풀냄새 나는 이불을 덮고 누운 그믐날 밤이면 오늘 저녁 잠이 들면 눈썹이 샌다는 불안함과 내일 아침 새 옷 입을 기쁨으로 스르르 잠이 든다. 설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새 옷 입고 한복 곱게 차려입은 아버지, 어머니께 세배를 드리면 “올해도 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해라”라고 아버지는 덕담해 주셨다. 엄마는 쟁반에 음식을 차려 들고, 찬 새벽공기 헤치고 옆 마을 큰집으로 향한다. 5형제 가족이 다 모인 큰집은 금방 잔칫집으로 변한다. 제사가 끝나면 작은 할아버지 댁에 가서 세배하고 산소에 다녀온다. 저녁이면 엄마는 동네 분들이랑 장구치고 노래를 하셨는데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올해는 엄마는 무릎관절 수술로 설을 병원에서 보내셨다. 그 유과 만들 때 돕던 꼬마 손이 자라 이제 엄마가 되어 한 가정의 중심에 서 있다. 나는 지금 아이들에게 어떤 설의 추억을 만들어 주는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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