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사회문제화 된 감정노동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사회문제화 된 감정노동
  • 경남일보
  • 승인 2021.02.2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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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제화 된 감정노동


유형의 물적 자원이 중시되던 산업사회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객에 대한 서비스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게 되었다. 따라서 마케팅 분야에서는 고객만족이나 고객감동을 강조하면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 활동을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은 만족하기도 하고 감동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서비스 접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처지는 대 고객 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는 기업의 방침이나 전략적 노력에 의해 감정표현의 규범을 표준화하고 강화함으로써 감정(Emotion)이나 느낌(Feeling)을 강제 당하고 통제 당하게 되는 것이다.

서비스 조직은 고객만족을 높이기 위해서 고객들이 서비스 제공자들과 접촉하는 동안에 상품이나 서비스 나아가 조직에 대하여 우호적인 감정을 갖게 하도록 상호관계의 질(質)을 관리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종업원의 감정표현 방식과 절차 등에 대하여 일정한 기준과 규범을 요구하게 된다. 조직에서 제정하여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이러한 기대규범을 수용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서비스 종사자들은 이른바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을 경험하게 된다. 1987년 미국의 사회학자 혹쉴드(A.R. Hocshild)가 항공기 승무원을 대상으로 한 사례연구에서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이래, 인간 본연의 속성인 ‘감정’을 노동 과정 속에서 교환가치로 추상화 하여 상품으로 판매하는 특별한 유형의 서비스 노동을 감정노동으로 보편화 하여 쓰게 되었다.

따라서 오랫동안 가치창출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노동을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으로 대별하여 관리해 오던 것을 감정노동의 영역까지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전체 산업에서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확대되고 동시에 고객만족 또는 서비스의 질이 서비스업계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부각됨에 따라 특히 대 고객 서비스 접점에서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종사자들은 조직이 요구하는 감정표현규범에 따라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때로는 자신의 감정 상태와 다르게 고객에게 연출하도록 강제 당하고 있다. 특히 서비스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감정표출행위는 그들이 수행하는 노동과정의 특성상 조직의 성과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이들의 감정노동은 조직의 철저한 통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서비스 산업의 확대발전에 따라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과거와 같이 한정된 직종 내에서 소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 산업에 걸쳐 보편적인 노동의 한 형태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한국 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감정노동 상위 10개의 직업으로 승무원, 홍보도우미, 통신서비스 판매원, 리포터, 음식서비스 관련 관리자, 검표원, 패스트푸드업 종사자, 고객 상담원, 미용사가 꼽힌다. 감정노동은 주로 고객 응대 업무에서 발생한다. 유통과 금융, 안내, 돌봄, 외식, 병원, 공공부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8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40%나 된다.

2017년 보건의료산업 연구에 따르면 1525명의 보건의료산업 종사자 중 67.9%가 감정노동으로 신체적·정신적 침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 95.4%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즉 감정노동자 중 3분의 2 이상이 고통을 경험했고 그중 대다수가 그냥 참고 견딘 셈이다. 이러한 감정노동은 신체적·정신적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나타날 수 있는 신체적 질병에는 방광염, 심뇌혈관 질환 등이 있다. 또한 정신적 질병에는 우울증과 자살충동,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등이 있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란 마치 삐에로처럼 자기의 감정 상태와는 무관하게 미소, 친절 등 특정한 감정 상태를 지속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밝은 표정을 짓지만 지속적으로 우울한 심리상태를 갖고 있는 것을 뜻한다. 그야말로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고, 아니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감정노동’이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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