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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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2.2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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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 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15)
유희선 시인의 수필 <종소리 울려 퍼지고>에서 새문안교회 13층 신축건물의 높은 종탑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천양희 시인은 “울려 퍼지는 종소리 그 뒤편에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과 같은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다”고 노래했다. 유희선 시인의 종소리 역시 회화동 성당에서 들려오는 유년시절의 꿈 같이 어리는 천상의 평화와 그 눈시울이 겹쳐서 흐르는 것일 터이다.

유희선 시인의 수필에서 <가위와 풀>이 압권이다. “신문 보는 인구가 줄고 있다. 시대 흐름이지만 나는 신문을 고집한다. 스크랩북 때문일 것이다. 스크랩이라면 많은 사람이 이미 몇 번씩 혹은 그 이상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늘 손 닿는 곳에 가위를 두고 이십오년 이상 지속하고 있다면 그 습관에는 뿌리 깊은 어떤 결핍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내 모습이 민망하지만 나는 가위질에 대해 이름다운 상상을 한다.”

그럴 때면 유 시인은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생각한다. “만년에 관절염으로 그림을 그리기 힘들 때 그는 손에다 붓을 묶어서 그림을 그렸다. 그것도 쉽지 않자 종이에 물감을 칠해서 색종이를 만들고 가위로 오려서 그 색면들을 붙이는 콜라주 작업에 몰두했다. 마티스는 이런 작업과정이 연필이나 다듬듯이 가위로 오려내고 붙이는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즐거움을 찾고 고통을 잊었을 것이다.”

그와는 달리 나는 “온갖 시끄러움과 잔혹함의 축소판인 신문 속에서도 미소짓고 감동하며 숨쉴 수 있는 구멍들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일상과 입체적으로 접속하는 것이다. 그러한 살뜰한 접촉과 경험의 지속성이 한 권의 결과물로 완성되면 그것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평범한 한 사람의 시선이 만들어지고 누군가에게 건내줄 선물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시인에게는 한 권의 스크랩북이 ‘작은 창조의 시작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소설가 요산 김정한의 스크랩북 서재를 떠올렸다. 소외되고 착취 당하는 현실 속의 이야기들을 가위질로 자르고 오려서 한 권의 스크랩을 넘어 민중적 아우성과 연대와 깎지 낀 이야기의 바다를 출렁거리게 한 진경 그 감동을 느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유 시인의 25년여 지속성과 요산 선생의 일생의 작업들은 시인과 소설가라는 각기 다른 무대 위에서 벌이는 축제요 퍼레이드였던 것! 어쩌면 눈시울이 시려 드는 내면의 환희였다고나 할까.

삼인삼색 수필동인지 세 번째는 조정자 수필가편이다. 조 작가는 2015년 ‘한국수필’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경남문인협회, 마산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가톨릭마산교구문인회 사무국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는 창원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했고 마산지방법원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작품집에는 <배내기> 등 12편을 발표했는데 대체로 어린시절 고성에서 자랐던 농촌 체험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어서 주목된다.

조 작가는 일반적 인상은 도시 여성으로서의 품새를 보이는 분인데 의외로 농촌 출신의 유년을 본격적으로 그리고 있음이 필자로서는 놀랍게 여기는 부분이다. 첫 번째 실린 <배내기>는 소재로나 작품성으로나 수월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눈여겨 둘 수필이다. 필자에게는 <배내기> 이야기가 필자의 신춘문예 당선작의 배경과 일치하는 것이라서 눈을 똥그렇게 뜨고 읽어내렸다.

“여름 땡볕에 무성하던 풀들이 처서가 지나면서 파리해지고 있다. 지난 밤 천둥치며 쏟아붓던 소나기의 영향도 있으리라. 바람과 비와 햇볕과 구름, 달빛을 먹고 자라서일까! 보드랍고 곱다. 나는 풀만 보면 어릴 때 소 먹이러 다니던 때가 생각난다. 독새풀과 오리새, 개밀과 쇠뜨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으면 더욱 그렇다. 이 쌀밥 같은 풀,얼마나 맛 있을까! 당장이라도 소를 몰아 여기 데려다 놓고 싶다. 어렵게 일어나면 아버지는 마구간에서 소를 데리고 나와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오래 된 감나무에 매어 놓고 내가 일어나 나오기를 기다렸다. 엄마가 깨워서 나가면 아버지는 고삐를 풀어서 건네주며 지게를 지고 앞장을 섰다. 아침에는 멀리 산으로 가지 않고 들길이나 언덕에서 풀을 뜯기므로 고삐를 내내 쥐고 있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논을 들러보고 벼의 자람을 살펴본 뒤 주변애서 풀을 베다가 바지게가 그득해지면 같이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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