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어머니, 여자
[강재남의 포엠산책]어머니, 여자
  • 경남일보
  • 승인 2021.03.01 1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머니, 여자 /복효근



어머니 혼자 기저귀를 가신다

스스로 아기가 되어

쭈그리고 앉아 기저귀를 가신다



어머니는 여자였구나



아버지가 나를 만드실 나이의 아버지가 된 내게

각시처럼 부끄러워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앙상한 엉덩이뼈를 감싼다



업거나 안고서

어디로 데려가겠다는 것 같다

그 어디에 가서는 진짜 아기가 될 것이다



죽음의 둘레가 만삭이다

산통이 좀 길다



---------------------------------------------------------------------------------

poem… 어머니도 여자였던 것을 잊고 사는 우리는 매일을 불효하고 매일을 가슴 친다. 자식이란 부모가 떠나고서야 그 자리를 깨닫는 존재인가보다. 노인성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잠깐씩 정신이 돌아왔을 때 혼자 기저귀를 가는 모습을 본 나는 뜻밖에 어머니의 여성성과 만난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엄마였을 뿐 어떤 불순한 것이 침범하지 못하는 성역이었던 나에게 어머니의 이런 행동은 당황스럽다. 부끄러워 불도 켜지 않은 채 앙상한 엉덩이를 감싸는 어머니는 새색시마냥 수줍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는 누구의 엄마도 아닌 한 남자의 아내였음을, 나를 만들 때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든 아들을 여자가 된 어머니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인 것을. 깨달음은 늘 후회를 동반한다. 나에게 어머니는 여자이면서 동시에 기저귀를 갈아줘야하는 아기로 환원분열을 일으키는 존재다. 이것은 다른 세상으로 가신 어머니가 새 몸을 받아 아기로 태어났을 거라 믿고픈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죽음의 둘레가 산통을 겪은 후 완성될 생명의 탄생을 보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