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44)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44)
  • 경남일보
  • 승인 2021.03.04 14: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94)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16)
삼인삼색 동인수필 ‘파란, 찬란’의 세 번째 동인 조정자의 수필 <배내기>를 읽고 있는 중이다. ‘소 풀 먹이기’는 보통 농가에서는 오후에 집안 소년 소녀들을 동원하는 것인데 지금 <배내기>는 아침 풀먹이기를 하고 돌아온 대목까지 읽었다. 물론 작가가 소녀시절에 아침 일찍 아버지와 같이 들판이나 언덕 같은 데로 고삐 잡고 나가서 그 일에 동참했던 것이었다.

“아버지가 베어 온 풀을 마구간에 넣어 주면 소는 아침에 덜 채운 배를 그걸로 때웠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 다시 소를 먹이러 갔다. 그렇게 돌보던 소는 우리 소가 아니었다. ‘배내기’다. 송아지때 데리고 와서 어미소가 될 때까지 키워 새끼를 낳으면 어미소는 돌려주고 송아지는 우리가 가지게 되는데 이때 데리고 온 소를 ‘배내기’라고 한다. 내가 몰고 다니던 소는 거의 배내기였다.”

화자의 집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 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필자도 유년시절 고향 산청에서 ‘소 풀 먹이기’를 몇 번인가 했는데 ‘배내기’ 소는 아니었다. 필자는 이때의 체험을 대학 다닐 때 시 작품으로 써서 시인이 된 바 있기 때문에 동지적 시선으로 읽기를 하고 있다.

“송아지가 오는 날은 부산하다. 마구간을 깨끗이 치우고 바닥에 보드라운 짚을 푹신하게 깔아놓고 밖으로 못나가게 입구에 모리떼도 걸치고 이유식도 만들어 놓았다. 나는 마을 입구에까지 나가 소가 오는 방향을 향해 뚫어지라 보다가 저만치서 나타나면 한달음에 달려와 엄마에게 알렸다. 아버지는 가마솥에 푹 고아 놓은 소죽을 한 번 더 뒤적거려 놓고, 엄마는 부엌으로 들어가 술상을 준비했다.”

송아지는 어미소와 같이 주인이 몰고 온 것이다.

“참 예쁘고 귀여웠다. 집안으로 쏙 들어가지마자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바람에 닭들이 놀라 달아나고 바지랑대를 툭 건드려 빨래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인지 원래 장난기가 많은지 꽤 사부댔다. 아버지는 손님에게 고삐를 건네받아 마당가 감나무에 느슨하게 매고는 김이 무럭무럭나는 여물을 한 통 갖다 주었다. 동시에 엄마는 부엌에서 술상을 차려 왔다. 마루에 앉아 정담을 나누는 동안 송아지는 계속해서 마당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를 건드려 일을 저질렀다. 어미소는 여물을 먹다 말고 수시로 고개를 들어 송아지가 있는 곳을 확인했다. 젖을 떼는 중이다 보니 가끔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젖을 더듬으면 어미소는 엉덩이를 돌리거나 발길질로 떼 내었다.”

송아지와 어미소의 헤어지기 전에 이뤄지는 동작들이 참 애틋한 면이 있다.

“해거름이 되자 손님과 아버지는 송아지 곁으로 살살 다가가 미리 준비한 목두레를 눈 깜박할 새 씌웠다. 목두레는 코뚜레를 끼우기 전 어린 송아지에게 씌우는 것인데 뿔이 나오고 살이 여물어지면 코뚜레로 바꾼다. 갑자기 닥친 일에 겁을 먹고는 몸을 흔들며 거북한 목두레를 벗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때 아버지는 감나무에 매 둔 고삐를 풀어 손님에게 건네주고 송아지 고삐를 거기에 맸다. 손님이 고삐를 살짝 끌자 어미소는 두어 걸음을 떼더니 선 채로 꿈쩍도 안 하였다. 한 번 더 세게 당기자 앞다리를 앞으로 쭉 뻗으며 반쯤 앉아버렸다. 손님이 잔등을 한 대 쳤다. 그래도 끄떡하지 않자 연거푸 몇 대를 쳤다. 그때 내 눈이 버티는 소의 그 큰 눈망울과 마주치게 되었다. 무서웠다. 싫었다.

무엇이 싫은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싫었다. 그 순간을 견디기가 힘들었고 사람인 내가 무서웠다. 송아지는 감나무가 뽑힐 듯이 목을 빼 절규하고 어미소의 울음은 온 동네를 들썩거리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계속)

<알림> 본란의 연재 229회분 <정직한 교단 수필가 문신수(5)>편에서 필자는 문작가의 생존시 에피소드들을 정리하던 중에 문신수 작가가 쓴 <남해 3.1독립운동 발상 기념비>가 필화사건을 만났던 이야기를 모 문인으로부터 듣고 이야기 속에 풀어 넣었던 일이 있습니다. 출처가 분명하여 정리했지만 역사 기술에는 다양한 자료에 입각해 푸는 것임을 생각하면서 다양한 출처를 일부 놓친 부분, 그로 인해 상처를 입은 분들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분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힙니다. 이번 3.1절을 지나는 중에 새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다는 바, 남해독립운동사가 옳고 바르게 정리되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최창민
  • 고충처리인 : 박철홍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