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공정과 정의사회 구현
선택적 공정과 정의사회 구현
  • 경남일보
  • 승인 2021.03.0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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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지난 주말 완사 오일장을 찾았다. 겨우내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 부족함이 없는 활기찬 장터 분위기를 느낄 겸 주말농장에 새로 입식할 나무묘목을 구할 요량이었다. 참가죽 단감나무 호두나무 등 종류마다 몇 그루씩 고른 다음 왕버들 묘목을 찾았지만 보이질 않았다. 보랏빛 맥문동과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는 경북 성주의 성밖 숲 왕버들의 풍치를 연상하며 몇 주 전부터 몇몇 나무시장을 둘러보았지만 구할 수 없었다.

장날 분위기는 역시 국밥집이 최고다. 순대 한 접시와 돼지국밥으로 출출함을 달래는데 왕버들 묘목이 빼곡하게 심어진 신도시 예정지가 TV장면에 나온다. 왕버들이 토지 전문 투기꾼들 사이에 인기 묘목으로 급부상했다고 한다. 희귀수종인 왕버들이 투기꾼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빽빽하게 심어 놓으면 나무 값에다 그루당 이식비용이 더해지면서 뻥튀기 보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왕버들은 1차 보상을 거부했다가 수개월 후 재 감정을 받으면 그 사이 키가 크는 속성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가는 높아지게 된다. 시간 곧 돈이 되는 수종인 셈이다. 어디 왕버들, 용버들 뿐이겠는가. 권력이나 고급정보를 가진 이들의 노림수에는 제2, 제3의 왕버들은 무궁무진하다. 단지 대상과 방식의 차이만 존재할 뿐 궁극의 목적은 하나다.

‘악어의 눈물’이 따로 없었다. 대국민 사과로 읍소한 다음 ‘개발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건 아닌 것 같다’ ‘전면 수용되는 신도시에 땅을 사는 것은 바보짓이다’ ‘개발이 안 될 거로 알고 샀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된 것 아닌가’라는 망언을 쏟아내는 장관을 어째야 좋을까. 직원들의 땅 투기 당시 사장이었던 국토교통부장관의 무책임한 행태를 보고도 겨우 경고수준으로 어물쩍 넘기려는 청와대는 또 어쩌면 좋을까.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의뭉스럽기 그지없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전수조사 운운하지만 이미 ‘선택적 공정과 정의 사회를 구현’한 집권세력의 말을 이제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몇 있겠나 싶다. 제 식구 감싸기란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1년 후 오늘은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도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의미다. 벌써 곳곳에서 여러 가지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레임덕이라는 단어가 거론된 것도 어제 오늘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LH발 공직사회 부패가 터진 시점에 전격 사퇴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내년 대선의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다. 4월 재보선 이후 예상되는 야권의 정계 개편과 맞물려 그의 정계 데뷔가 유력하게 점쳐진다. 현실 정치의 주요 변곡점이 될지는 미지수지만 국민들이 염원하는 ‘공정과 정의’는 내년 대선의 최대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을 통해 실현을 기대 했던 ‘공정과 정의’가 역설적이게도 임기 말 시대정신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의 중대한 실책이다.

특정 이념으로 국민을 깨우치려 들었고, 국민을 가지런히 줄 세우려 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권력과 부를 두고 국민과 다투어서 벌어진 일이다. 문민독재라는 말이 달리 나오지 않았다. 제 편 챙기느라 피폐해진 국민들의 삶은 보이지 않았다. 누적된 ‘영끌’로 압축된 설움이 폭발하기 직전에 터진 공직자의 투기 행각은 그냥 불거진 게 아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일련의 법률개정 시리즈는 신 적폐를 양산했다. ‘적폐총량의 법칙’이라도 작동한 건지 모르겠다. 이제는 LH직원 투기의혹 같은 공직자의 투기행각이 터져도 검찰은 수사조차 못하게 됐다. 국민상식을 뛰어 넘는 집권세력 내 ‘빌런’ 무리들이 준동하면서 창안해 낸 결과물이다. 청사에 길이 빛날 업적이라도 세운 듯 의기양양한 그들에게 수오지심은 있는지 묻고 싶다.
 
한중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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