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도 좀 쫓고
귀신도 좀 쫓고
  • 경남일보
  • 승인 2021.03.0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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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진주문인협회이사)
이정옥

보름날 동창 J와 진주중학교를 방문했다. 진주 춤을 전승하고 그 가치를 홍보하는 J는 팔검무 전수자다. 늦깎이 열정으로 ‘학교를 찾아가는 문화예술’이라는 기획에도 합류했다. 현장 반응이 녹록지 않은 모양이었다. 발품 마다 않는 J를 따라 기꺼이 동행한 걸음이었다.

교장선생님이 큰 힘이 되었다. 향교에서의 명심보감을 공부하고, 아버지합창단 단장으로도 활동하면서 역대 교장선생님들의 업적을 기리는 것으로 진주정신을 가르치고 있었다. 문화예술이 미래임을 공감했다. 퇴직 후 진주문화해설사로 살아 갈 새로운 인생을 벼리는 모습이 남달라 보였다.

교정에서 보이는 비봉산이 이마에 닿았다. 산자락 스쳐온 바람 끝에 봄기운이 완연했다. 전통만큼 오래된 교목에도 물이 올랐다. 담장 옆 수수한 촌로가 운영하는 밥집에 들렀다. 오곡밥 갖은 찬들이 꽤나 정성스러웠다. 어릴 적 풍경들이 아련해졌다. 조리 들고 오곡밥 얻던 조무래기들은 하루종일 춤판을 따라다녔다. 색색의 고깔모자 쓴 춤꾼들이 북, 징, 괭과리로 집터를 울리면 원색의 무쇠 소리가 맨 나중까지 여운을 남겼다. 동네의 축제요, 봄의 향연이며, 관이 주도한 종합예술이었던 정월대보름 행사는 바야흐로 봄을 알리는 전령이었다. 코로나19는 이런 풍경마저 앗아갔다. 땅 울리는 소리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은 쓸쓸한 낮이었다.

그날 밤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국수호 춤 공연이 있었다. J의 해설로 우리 춤, 우리 악기, 우리 몸짓을 제대로 보았다.

흥과 멋과 운치가 장관이었다. 춤꾼들이 장악한 무대는 가히 역동적이었다. 관객석도 들썩였다. 손뼉 치고 환호하며 신명이 났다. 고요한 아우성, 정중동인가 하면 어느새 포효이자 절규로 변했고 내쳐 북으로 장구로 파죽지세로 몰아쳤다. 대지와 우주를 가로막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재난 극복 의지를 한껏 북돋아 대동단결하게 했다.

로비에서 국수호 선생님을 일별했다. 귀한 무대 마련해 주심에 감사하다는 인사들에 “시국이 이랄수록 걸판지게 한 번 놀아 봐야지유. 해서, 진주 땅도 울리고 코로나 귀신도 좀 쫓고 그랄라고 왔어유.” 답답한 마스크 너머 담대한 바람 한 점 제대로 들어왔다.

문화도 예술도 가치 전승도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역병을 쫓아내는 행위마저 예술로 승화시킨 우리 춤사위 공연에서 진주의 미래를 보았다.

이정옥/진주문인협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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