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공주 오유진
트로트 공주 오유진
  • 경남일보
  • 승인 2021.03.1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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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한 동안 코로나와 휴식년으로 인해 주로 집에만 있었다. 책과 신문으로는 눈이 피곤해져 귀를 열었다. 내 코로나 블루를 달래준 게 있다면, 한 해 동안 간헐적으로 들어온 대중가요다. 국악, 팝, 재즈, 블루스, 발라드, 엔카 등을 가리지 않았다. 이 중에서도 트로트의 재발견이 내 취향 중에서 가장 변화된 부분이었다. 이런저런 경험으로 생각하고 느껴온 지식인과 정치인의 허위의식을 잠시 잊을 수 있었던 건, 젊거나 어리거나 한 트로트 가창자의 순수한 목소리였다.

소멸될 것으로 알았던 트로트가 2년 전부터 부활하기 시작했다. 이에 관련된 경연과 예능 프로그램이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경상도 사람들에게 있어서 트로트 수요층의 폭은 매우 넓다. 전라도의 육자배기가 판소리와 친연성을 가지듯이, 경상도 메나리토리는 트로트와 유사성을 지닌다. 이런 비교문화론적인 이유 때문에, 경상도 사람들은 세칭 뽕짝을 즐긴다. 포항에서 하동으로 이르는 동남 해안 지대는 트로트의 성지와 다를 바 없다. 그밖에도, 교방의 기예 전통이 있었던 대구·진주·밀양 등의 내륙도 트로트가 강세다.

최근의 젊은 트로트계에도 우리 경남 인물로 넘쳐나고 있다. 진해의 진해성은 10년 무명 설움을 딛고 한 경연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진해의 별빛에 머물지 않고, 이제 전국의 금빛이 되었다. 엄청난 도전과 좌절을 겪으며 살아온 김해의 은가은은 다른 경연에서 톱7의 결승진출자가 되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이제 가볍게 비상하려고 한다. 그가 살아온 스토리는 한 편의 휴먼 드라마다.

미성년자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김해의 성민지, 진주의 오유진, 하동의 정동원이 그들이다. 이 중에서 오유진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 경연에서 3위를 차지한 후에는 진주를 물들이고, 전국을 들썩였다. 진짜 소리를 자연스레 끌어올린다. 여기에다 가성을 짐짓 살짝 얹히기도 한다. 그리곤 올라간 소리를 끄집어 내린다. 이를 뒤집어서 제 자리에 놓는다. 트로트의 제 맛을 안다는 얘기다. 그에겐 장점이 너무 많다. 이해와 표현이 완벽하다. 가창력, 기교, 색소폰 연주 솜씨는 수준급. 하지만 최고 장기는 귀에 쏙쏙 박히는 것 같은 정확한 가사전달력과 발성법이다. 가요계의 김연아로 성장할 게 틀림없다.

진주의 가창문화는 연원이 자못 깊고, 전통의 흔적도 또렷하다. 19세기 진주 기생의 영제(嶺制) 시조창, 이선유의 판소리에 깃든 소리 그늘, 남인수의 각별한 음색이 만들어낸 미성, 김수악의 구음 시나위는 일세를 풍미했다. 진주의 소리는 앞으로 오유진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 경연에서 초등학생 두 명이 엄청난 선풍을 일으켰다. 국악가요 신동의 출현이라며 다들 좋아라고 난리를 치고 있지만, 국악의 흐릿한 음색으로써 인생의 무거운 의미를 어른들이 요구하는 삶의 구석으로 투사하는 것을 보고, 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노래는 어른들 세계의 대리만족물이 될 수 없다. 반면에, 오유진의 맑고 경쾌하고 단아한 목소리는 어른들이 스스로 즐거워하도록 이끌어간다. 이게 차이다.

송희복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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