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추억
파리의 추억
  • 경남일보
  • 승인 2021.03.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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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전 창원중부경찰서장)
 

미녀는 흉측한 몰골의 야수가 구애를 해 올 때마다 죽고 싶도록 싫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야수의 인간적인 진심을 알게 되면서 야수가 좋아졌다.

미녀와 야수의 러브 스토리의 대간이다. 파리와 에펠탑의 스토리도 이와 흡사하다. 에펠탑이 처음 건립 될 당시 파리 시민들은 에펠탑이 파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당시 파리는 거의 수평적인 바로크 풍의 도시로 제일 높은 건물이 58m의 노틀담성당이 고작이어서 300m높이의 흉측한 철제 건축물은 부조화라는 것이다. 모파상 같은 작가는 에펠탑을 너무 싫어해서 차라리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에펠탑 안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한다.

파리 시민들의 반발이 너무 거세지자 프랑스 정부는 20년 후에 철거 한다는 조건으로 공사를 강행했다. 20년이 지난 후에는 에펠탑 꼭대기에 라디오 중계 안테나가 설치된 덕분으로 철거 위기를 모면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들은 에펠탑이 좋아지게 됐다. 여기서 에펠탑 효과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처음에는 싫어하거나 무관심했던 대상이 반복 노출되면서 호감도가 증가하는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에펠탑 효과’라고 한다. 여하튼 파리 시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평면적인 도시에 에펠탑과 같은 수직적 전망대의 필요성을 점차 인정하게 됐다. 또한 다른 나라에서도 여기 저기 에펠탑을 모방한 고층탑이 건립되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도 이 탑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연간 3000만명을 능가했다.

이런 에펠탑에서 시가지 전경을 내려다보다가 뜨리가드 광장으로 가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맘껏 폼을 잡아보는 것도 좋았다.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방에 사람들에 떠밀려 들어갔다가 떠밀려 나오면서 어마어마한 관람 인파에 놀랐다. 그 중에 한국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에 또 놀랐다.

사라질듯 애절한 에디뜨 삐아프의 ‘파리 하늘 아래서’ 를 들으며 몽마르뜨 언덕을 올라 인상파 화가들과 반 고흐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카페에서 뱅쇼 한 잔에 몸을 녹였다. 개선문 12거리 로타리를 돌아 상제리제의 야경에 흠뻑 취해 보다가 세느강 유람선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플르베르의 못다 한 사랑 노래를 띄워 본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화려함에 멘붕 지경까지 갔다가 루이16세와 마리 앙투네트의 비극적 종말에 ‘歡樂極兮哀情多(환락극혜애정다·지나치게 즐거움이 넘치면 훗날 슬픔만 남는다)’라는 싯귀를 떠올려 본다. 파리는 파리 전체가 예술품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대단하고 위대한 도시이다. 코로나 이전의 추억이 새삼스럽다.


강선주 (전 창원중부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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