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를 가르치는 즐거움은 이제 필요 없다
영재를 가르치는 즐거움은 이제 필요 없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03.17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유석 (객원논설위원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2021년 입시 결과를 받아들이는 지방 대학의 심정은 참담하다. 운 좋게 모집 정원을 채웠다 하더라도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크다. 학령인구의 감소는 가속화되고, 앞으로 다가올 파고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다. 여기에 지방 대학은 수도권 대학과의 암묵적인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어렵기도 하다.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대학이 더 이상 상아탑의 경지를 추구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학생 선발의 방향에 대한 재고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대학이 학문적으로 세상을 선도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유용한 기술을 전수하던 때는 이미 지났다. 혁신과 변혁은 대학 내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대학 밖에서 찾을 수 있게 된 지 오래다. 사소한 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세계적인 기업의 수장들 가운데 대학 중퇴자가 적지 않은 것을 보라. 그 외에도 제도권 교육 바깥에서 새로운 성취를 얻은 문화 예술인들도 있다. 그렇다고 대학이 지닌 고등교육이라는 목적이 완전히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은 몇 명의 천재들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누군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품고 있다고 해서 세상이 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세상이 바뀌려면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실현되어 세상에 작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실현에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이제 대학은 영재 혹은 수재와 같이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인물을 길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들과 함께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많은 동반자들을 길러내는 데 더 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19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 초까지 현대 과학은 일대 변혁을 이루었다. 이 변혁의 중심에는 천재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아인슈타인, 보어, 하이젠베르크, 퀴리, 플랑크, 코흐, 플레밍, 파스퇴르 등과 초기 노벨상 수상자들을 보면 그들의 연구 성과가 우리 세상을 얼마나 바꾸었는지 그 정도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만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퀴리의 플루토늄과 라듐 연구는 후학들과 공학자들의 연구 성과와 맞물려 원자력이 되기도 하고 원자폭탄이 되기도 했다. 한편 페니실린이라는 1세대 항생제를 찾아낸 플레밍의 경우, 발견으로 그치지 않고 항생제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졌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 하나의 연구 성과는 후학들에 의해 그리고 협업에 의해 더 큰 변혁을 이루어낸다.

요즘은 한 개인이 고독한 천재로 두각을 나타내고 홀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세상은 복잡해졌으며, 단독 연구만으로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소위 ‘천재들의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의 천재가 아니라, 협업을 이룰 수 있는 수준 높은 많은 인재들이다. 지금의 대학은 이러한 협업 가능한 수준 높은 인재를 선발하고 기르는 데 그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맹자가 말한 군자삼락(君子三樂)의 마지막 즐거움은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즐거움’이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이제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가려 뽑아 인재로 만든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가능성 있는 학생을 선발하여 육성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 세계는 한 명의 천재가 열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협업을 하는 열 명이 한 걸음을 나아갈 때 진정한 변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학생 선발에 목매지 말고, 좋은 학생을 길러낼 목표를 강화하는 것. 이것이 대학이 살 길, 특히 지방 대학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서유석 객원논설위원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